떠나는 가을 그리고 인생
떠나는 가을 그리고 인생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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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가을은 꼬리까지 감추어 가지만, 그 하늘 우러러도 부끄럽지 않는 결단코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목숨이 어디 있으랴. 나름대로 밑져주고 속아주며, 그럼에도 억울하다 여기지 않고 성급히 이룩하지도 쟁취하지도 말자. 그러느라 주며 잃으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혜와 경륜마저 터득하고 비로소 긴 안목과 광활한 시야를 보는 것 아니던가. 때로는 회한이 더 깊고, 수치도 느낄 줄 알며, 상처도 쓰다듬고서 그윽한 눈길로 인생을 가슴으로 들여다보며 가장 부끄러운 가식을 벗고 진솔한 자신과 만나자.

시선은 먼 데 하늘가 노을 자락에 던져두고서라도, 살아온 삶을 떠올리며 너무도 변해 버린 허망스런 자신에게, 아픔과 슬픔에 객쩍은 웃음 웃고서 말없이 자신을 뒤돌아보자. 한 장의 나뭇잎이 혼신 그대로 피멍이든 가을낙엽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당할 일 못 당할 일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견디어 왔을까? 찢기고, 더렵혀지고, 벌레 구멍 패이고, 피멍 자국 검붉은 가을 낙엽이 되어 상처를 지님으로서 삶은 오묘해지는 듯. 모름지기 우리 인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비록 벌레 구멍 피멍 자국 서리 묻은 낙엽일지라도, 때로는 새롭게 그리워지는 진실이며, 그런 진실 때문에 삶의 상처도 새롭고 소중해지는 것 아니던가. 깨끗함을 잃고서야 깊어지던 눈길로, 상처 없는 인생은 결코 없듯이 상처야말로 삶을 오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오뉴월 신록의 아름다움을 잃은 그런 수치가 인생으로 느껴지는 게 가을이고 우리에겐 저녁의 나이가 아니랴. 가을은 뒷모습만 보인 채 쓸쓸히 떠나가지만, 그래도 우리는 잎새같이 벌레 먹고 피멍든 가을 잎 같은 사람으로, 천천히 조용히 뉘우치며 아파하며 경건해지고 순수해지고 또 겸허해지자.

제 아무리 잘살아 왔다 해도 인생은 자랑보다 수치를 더 많이 만들게 되는 것이며, 아름다움도 지속되는 것이 인생일 수 없고, 인생은 주며 잃으며 빼앗기며, 그럼에도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던가. 바람 끝에 떨어진 발 앞의 붉은 낙엽이 원하는 게 있다면, 서로의 마음이듯 지금 이대로의 모양이듯, 그 한 장 한 장에 스며있는 사연이 가장 소중한 사람의 가장 가슴 아픈 모습처럼 느껴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 낙엽 같은 이 모습일지라도 긴 세월 살아오면서, 겪어 오면서 많은 아픔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새롭고, 이런대로 삶의 진실은 있었다고.

낙엽지고, 찬비 뿌리고, 목숨들은 잃을 것을 잃고 버릴 것은 버린 채 겨울을 향해 제 모습, 제 빛깔,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과 세상을 보는 마음의 각도가 달라지며, 인생이란 것을 느끼고 헤아릴 수 있는 가슴이 한꺼번에 깊어져 오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 모두 길을 걸으며, 낙엽을 밟으며,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을 잊으며, 지우며, 가을 뒷자락의 나무처럼 벗을 것은 벗고, 버릴 것은 버리고, 잊을 것은 잊기로 하자. 올라가는 길도 내려가듯 걸으며 결국 모든 생명의 흐름도, 인생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대자연의 순응하는 법칙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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