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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창립 진주생체협 10년 새 3배 확대허정기가 쓰는 진주체육사 <10>생활체육 태동 및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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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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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농구연합회2
진주시농구연합회
 
우리나라의 체육정책과 제도는 정부수립 후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행정기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체육정책과 제도의 틀을 확립해 체육진흥의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제3공화국 이후이다. 제3공화국 이전에는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경기기술 향상, 올림픽대회 참가를 통한 국위선양, 다른 나라와의 스포츠 교류 등이 이루어져 사실상 민간 주도로 체육행정의 전반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국민의 관심 속에 이루어질 수 있는 체육의 대중화는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이에 대한 정부지원도 극히 미약했다.

제3공화국은 체육을 통해 국민적 통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체육정책제도를 확립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정부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국민체위 향상과 국민통합의 원동력이자 국가발전의 기본으로 인식해 엘리트체육 육성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국민체육진흥법’의 제정과 국민체육진흥재단의 설립 등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고 강력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한 체육정책을 펼치면서 국민체육시대로의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제5공화국은 스포츠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체육부문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체육부문에 대한 정책의지는 체육부 출범으로 가시화된다. 체육부 신설로 국민체육진흥을 본격화하고 체육을 생활화하며, 체육을 통한 국민화합과 복지증진 및 국위선양을 도모하고자 하는 정책의지를 관철시켜 나가려고 했다. 또한 이를 통해 1986년에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에 서울올림픽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준비를 국가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했다.

제6공화국은 엘리트스포츠 육성을 모체로 ‘국민생활체육진흥종합계획(일명 호돌이 계획)’을 세우고 생활체육을 전담할 수 있는 국민생활체육협의회를 탄생시켜 국민생활체육 발전의 제도적 기반을 확고히 구축하고자 했다. 특히 서울올림픽 이후 스포츠 활동에 대한 국민의식이 크게 개선되고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건강의 유지 및 증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에 부응해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생활체육의 진흥에 강한 의지를 보였고 이전 정부에 비해 생활체육진흥에 대한 국가의 행정조직 및 기구의 정비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89년 10월 20일 대통령령 ‘제12829호’에 의해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설립되자, 진주에서도 그 다음해인 1990년 9월 21일 진주시생활협의회가 창립됐다. 창립 당시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는 육상, 축구, 야구, 정구, 탁구, 배드민턴, 게이트볼, 등산 등 8개종목으로 출범했으며, 초대회장에 원종록씨가 맡았다.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 사무실은 당시 진주시청(본성동)내에 두었다. 1991년 2월 8일에는 진주시 상평동 생활체육관내에 협의회 합동사무실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활성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생활체육관에 사무실이 설치된 8여개월 후인 1991년 10년 25일 협의회 사무실이 본성동에서 상평동으로 이전하면서 진주생활체육은 상평동 시대를 맞게 됐다.

이후 1992년 3월 20일 생활체육 테니스코트장이 개장(10면)되고,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가 전면 위탁 받아 운영하는 등 진주생활체육이 점차 자리잡아 가기 시작했다. 초대 진주시생활협의회장을 맡았던 원종록 회장이 2대 협의회장에 추대되면서 연임하게 되고, 1993년 3월 30일에 취임했다. 특히 창립 3년째를 넘기면서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는 종목별 연합회의 가입이 잇따르는 등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했으며, 각종 대회를 개최하는 등 발전기를 맞았다.

창립 당시 8개 종목으로 출범했던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는 1993년 3월 20일 국민생활체육 진주시테니스연합회, 같은 해 10월 7일에는 국민생활체육 진주시볼링연합회와 국민생활체육 진주시족구연합회 등 3개 종목 생활체육 연합회가 대거 가입했으며, 특히 같은 해 5월 16일에는 제3회 경상남도생활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범위가 넓혀졌다.

3개 종목 생활체육 연합회의 가입을 필두로 해마다 가입이 잇따랐다. 1994년 4월 25일에는 국민생활체육 진주시검도연합회를 비롯해 국민생활체육 진주시궁도연합회, 국민생활체육 진주시건강체조연합회, 국민생활체육 진주시자전거연합회, 국민생활체육 진주시농구연합회 등 5개 국민생활 연합회가 가입했다. 특히 1994년 12월 21일 진주시와 진양군생활체육협의회가 통합협의회로 출범하면서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의 조직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같은 날 원종록 회장이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 3대 협의회장에 취임했다. 특히 1996년 2월 13일에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 4대 회장에 원종록 회장이 취임하면서 임기가 4년으로 연장됐다.

1997년 2월 1일 진주시생활체육관의 관리를 위탁받았으며, 잠시 추춤했던 생활체육 종목별 연합회 가입도 계속됐다. 1999년 2월 19일 국민생활체육 진주시배구연합회가, 같은 해 7월 25일에는 국민생활체육 진주시택견연합회와 국민생활체육 진주시스킨스쿠버연합회, 국민생활체육 진주시24반무예연합회가 각각 가입했다.

그리고 2000년에 들어서도 생활체육 종목별 연합회 가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의 활동영역도 확대됐다. 2000년 3월 8일에 국민생활체육 진주시국학기공연합회를 비롯해 국민생활체육 진주시댄스스포츠연합회, 국민생활체육 진주시당구연합회, 국민생활체육 진주시페러글라이딩연합회 등 4개 생활체육 종목연합회가 가입했다. 특히 같은 날 탁구 광장이 개설돼 생활탁구가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2000년 9월 21일에는 원종록 회장에 이어 제5대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장에 금대호씨가 취임했다.

1990년 창립돼 8개 종목으로 출범했던 진주시생활체육협의회는 10년이 지난 2000년에는 23개 종목별연합회가 가입돼 있는 등 3배 가까이 확대된 조직으로 발전했다.

/전 진주문화방송 편성·보도국장, 진주시체육회 부회장

경남·진주축구협회 부회장, 진주시문화상 수상

진주시탁구연합회
진주시탁구연합회 주최 탁구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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