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기는 스마트폰 문화를 경계한다
호연지기는 스마트폰 문화를 경계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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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현대사회에서 정치가 있어야 하는 목적은 공정한 이해관계의 도출에서 구성원의 차별적 소외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국가가 중심으로 실현해 나가는 행위를 큰 의미에서의 정치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행위의 뿌리에는 국가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생존과 공존을 도출해내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런 만큼의 업보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역주의, 권위주의, 정경유착 등 수많은 소모적 갈등을 초래해 왔던 우리 정치는 전통적 공동체 의식을 혈연, 지연, 학연 등 각종 우연적 연줄을 타고 사회를 무질서하게 하는 이른바 연고주의의 형태가 온존하고 있다. 외형적인 사회운영의 모양은 근대 시민사회의 전개와 활성화로 전통사회의 잔재가 청산되는 듯하지만 사회 곳곳에 미숙하고 소모지향적인 정치 사회적 갈등에 뒤흔들린다. 여기에 스마트폰 문화가 뒤엉켜 있다.

자연은 외적 환경변화와 도전에도 알아서 적응하고 스스로 생동감과 생명력을 이어간다. 개인이나 국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생동감 있는 조직으로 생명력을 잃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 다시 말해 생태적 국가 삶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국가적 삶에도 개인의 삶과 같이 호연지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연(浩然)’은 넓고 큰 모습을 형용하는 의태어이다. 그러므로 ‘호연지기(浩然之氣)’는 크고 넓게, 즉 왕성하게 뻗친 기운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호연지기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사소한 것, 금방 결과가 나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 말고 좀 더 원대하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도모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은 너무나 물질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또한 마음이 급해서 금방 결과가 나오는 일에 몰두하고, 사리사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경향이 많아 사회가 그만큼 팍팍해지고 있다. 그런데 ‘호연지기’ 정신은 공명정대하고 큰 목표를 향하기 때문에 서로 화합할 수 있고 최소의 갈등으로 서로 이익이 되는 공존과 공동의 선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현실로서 우려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스마트폰 문화다. 학생이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거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다. 기사검색, 음악이나 라디오 듣기, 문자 주고받기, 게임 몰두 등 그 이용목적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의 상황에 갇히고 있다. 이전에는 개별적인 미디어를 통해서 이뤄졌던 일들이 스마트폰이라는 하나의 기계로 통합돼 가는 생활양태를 보이고 있다. 스마트폰이 많은 사람들의 손에 쥐여져 있고, 그 문화가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가 스마트폰으로 인해 어떤 방향성으로의 편향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파편적 지(智)의 확장은 가능하게 하나 삶의 에너지의 원천을 생각하게 하는 데는 장막을 치게 되는 개연성을 안고 있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은 분명히 이전보다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마주하는 그 세상은 재 매개(re-mediation)돤 세상이다. 재 매개된 세상은 우리와 깊은 교감을 나누기보다는 그저 ‘대상화’된다. 객관적인 거리감을 유지한 채 교감되어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스마트폰 문화의 역설이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마주하는 유명인사, 정치인, 연예인들은 컴퓨터 게임 속의 캐릭터와 같은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사회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듯 하지만 여전히 구경꾼에 머물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큰 편의를 주었는가를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개인이나 국가적 삶의 에너지를 어떻게 지속시키게 하는가를 성찰하는 양식과 자세도 필요하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요동치는 개별적 사고의 총체가 전제될 때 그래도 발전적 미래가 담보되는 법이다. 요동은 큰 틀을 찾아 나가는 기(氣)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성장동력이 꺼져가고 에너지가 소진돼 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스마트폰 안의 세계는 광활하다. 그러나 그것을 매개하는 대상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오로지 손가락 작동과 두뇌의 각(覺)으로서는 ‘호연지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기(氣)는 정신(精神)과 체(體)의 합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호연지기’는 스마트폰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적 삶의 긴 에너지는 호연지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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