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2>
오늘의 저편 <232>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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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땅에 묻은 김가는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마을을 떠났다.

용진이는 잔병치레를 많이 하지 않고 잘 자라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녀석

은 여간 영리하지 않아서 일등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진석은 툭하면 용진의 입학 기념사진을 들여다보고는 했다.

양력 팔월이 열리면서 날씨는 말 그대로 푹푹 찌고 있었다.

담 아래에 피어 있는 봉숭아꽃에 물을 주고 있던 민숙은 점박이가 별안간 짖어대는 바람에 놀란 눈을 홉떴다.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대문 흔드는 소리까지 들리는 바람에 민숙은 바짝 긴장했다. 점박이가 짖어대는 것으로 보아 형식이가 찾아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개구멍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진석은 뒷방에서 나왔다.

“누구세요?”

민숙은 대문에다 대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 엄마??.”

“뭐 엄마? 용진이니?”

서울에 있어야 할 아들의 목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오자 민숙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오학년인 녀석이 혼자 찾아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더욱이 녀석은 갓난아기 때 학동을 떠난 이유로 단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

대문을 연 민숙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서 있는 아들을 보며 눈을 멀겋게 떴다. 눈물을 왈칵 쏟으며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아들의 등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엄마 보고 싶어서 왔단 말야.”

용진은 울음을 터뜨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이의 손에는 학동 주소가 적힌 편지 봉투가 쥐여져 있었다.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다 큰 사내새끼가 어미타령만 해 가지고 장차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니?”

그러나 민숙은 변덕을 부리듯 또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주소 하날 달랑 들고 어미를 보겠다고 찾아온 아들을 더는 때릴 수가 없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이제 용진은 어머니의 품속에서 마음 놓고 엉엉 울어댔다.

‘용진아, 미안하다.’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진석은 가슴이 뭉클해 옴을 느꼈다.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아온 그였다. 마음 같아선 앞마당으로 달려 나가 녀석을 힘껏 한번 안아보고 싶었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스스로를 자제하듯 진석은 목을 힘껏 가로저었다. 나부대기 좋아할 나이인 녀석이 금방이라도 뒷마당으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아들과 얼굴을 맞닥뜨릴 생각만 해도 설렘과 두려움으로 온몸의 피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개구멍으로 목을 돌렸다. 다리는 꼼짝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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