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3>
오늘의 저편 <233>
  • 경남일보
  • 승인 2012.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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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좀 씻긴 민숙은 서둘러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곧장 녀석을 서울로 데려가야 했던 것이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있었다. 걱정하고 있을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생각하면 잠시도 아들을 껴안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담 밖으로 나가고 만 진석은 귀를 담에다 대고 집안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엄마, 나 방학 끝날 때까지 엄마하고 여기 있을 거야.”

용진은 엄마하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좋은지 서울로 가자는 말에 궁둥이를 뒤로 뺐다.

“너 혼자 여기 있을래? 엄만 지금 서울 갈 참이었는데.”

“엄마도 서울에서 고모하고 할머니하고 같이 살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응. 엄마하고 같이 사는 거 소원이야.”

“이 엄마도 우리 아들하고 같이 사는 것이 소원이야.”

아들에게 꿈을 잔뜩 심어준 민숙은 한없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며 용진의 손을 잡고는 서울로 향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지 용진은 마냥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뒷산으로 올라간 진석은 아내와 아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뜨거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민숙 모자가 서울 집에 도착했을 때 여주댁은 넋이 완전히 나가버린 얼굴로 용진을 찾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너도 참, 다 큰 애 손을 잡고 다니니?”

며느리와 손자의 손을 왁살스레 떼어놓으며 여주댁은 민숙을 흘겼다. 며느리 몸에도 나균이 붙어 있을 것이라고 염려하기 때문일까. 손자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는 할미로서 느끼는 일종의 소외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어미를 찾아간 손자도 밉지만 아들과 손을 떡하니 잡고 나타난 며느리가 여간 밉살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무심결에 민숙은 그렇게 말해 버렸다. 말을 해 놓고 나서야 어른한테 버릇없이 대들었던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헛! 너 이놈의 자식, 할미한테 허락도 안 받고 어딜 갔다 온 거야? 응?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며느리에게 놀란 눈을 멀겋게 뜨던 여주댁은 난데없이 손자의 엉덩짝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왜 때려? 할머니 미워! 할머니 싫어!”

용진은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듯 씩씩대며 떠들었다.

“용진아, 할머니께 다신 안 그러겠다고 말씀 드려.”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민숙은 아들을 감싸 안았다.

“에미얏, 무슨 짓이냐? 당장 시골로 가거라. 어서!”

기절할 듯 놀란 여주댁은 민숙을 떼어내선 아예 대문 밖까지 이끌고 나갔다.

‘이제 와서 왜 이러니? 그 동안 잘 견뎌왔으면서 말이다. 이게 다 우리 용진이를 위하는 일이라는 걸 너도 잘 알잖니?’

여주댁은 눈으로 열심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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