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7>
오늘의 저편 <237>
  • 경남일보
  • 승인 2012.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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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보야, 이제 정말 돌아가.” 민숙은 버릇이 된 농담처럼 또 형식에게 바보라고 놀렸다.

“누난 내가 바본지 오늘 처음 알았어요?” 형식은 농담으로 받으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걸음을 멈추고는 멀어져가는 민숙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맑은 눈물이 끓어 넘치고 있는 그 눈엔 민숙의 모습만이 어리고 있었다.

진석은 몸을 슬그머니 일으켰다. 형식을 먼저 돌로 내리칠 작정이었다.

“그러게. 진즉에 알긴 했지만 난 네가 가짜 바보인줄 알았지.”

민숙은 뒤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누나, 그거 알아요? 형에게 묶여 있는 누나의 바보 같은 그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서였다는 것을요.”

형식은 덧붙여 말했다. 진석이 형이 무척 부러울 뿐이라고.

바보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민숙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내가 부럽다고? 바보 같은 놈!’

형식의 등 뒤로 가 있던 진석은 들고 있던 돌을 슬그머니 땅에 놓았다.

“형식아!”

그리고는 상대가 등을 돌리기 전에 침착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혀, 혀엉! 언제 왔어요?” 영문도 모르는 형식은 무조건 반색했다. 눈을 민숙의 등으로 그었다간 진석에게로 재빨리 끌어당기기도 했다.

“가게 일로 바쁠 텐데 용진 엄마 여기까지 바래다줘서 고맙다.” 진석은 능청스럽게 인사를 챙겼다.

민숙은 이미 저만치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가던 길을 재촉하기만 했다.

형식은 서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흥, 바보 같은 놈!’ 형식의 뒷모습을 잠간 지켜보며 진석은 어이없이 또 중얼거렸다.

고갯길에서 뒷산으로 내려선 민숙은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도둑이야!” 민숙을 좀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발소리를 죽인 채 따라가고 있던 진석은 아내의 귀에만 살짝 닿을 정도의 목소리를 냈다.

“후, 후 훔 훔??.” 남편이 뒤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민숙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내 친구들 겨울양식을 훔치면 쓰나?” 진석은 장난기 섞인 얼굴로 웃었다.

“아주 쪼끔만 훔칠게요.” 민숙이도 웃음으로 받았다.

“서울에선 캄캄한 새벽에 출발했겠군.” 그는 굳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형식이가 지지대고개까지 바래다줬어요.”

그녀는 굳이 형식이 이름을 들먹였다. 간밤에 그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어?”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목을 끄덕였다.

주인 냄새를 맡고 달려온 점박이가 앞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민숙의 품에 안겼다. “응, 그래. 집 잘 지키고 있었어?”

그녀도 반색하며 점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민숙과 진석은 산책이라도 나왔던 사람처럼 나란히 걸었고 점박이는 그들을 따라가며 꼬리로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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