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번진다
마음이 번진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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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현 (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투명한 컵에 깨끗한 물을 담고 그 위로 물감을 떨어뜨리면 그 색과 번지는 모양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되다보면 어느새 맑은 물은 사라지고 뿌옇게 탁한 물만 남는다. 그래서 아무리 진한 물감을 떨어뜨려봐야 색도, 모양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리고 순수할 때는 아주 작은 감정도 무엇인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있었지만, 그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마음이 자라다보니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어정쩡하게 자라버린 마음은 뒤섞여진 감정을 통제하기엔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왜 갑자기 이런 동화나 환상과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얼마 전에 본 영화가 너무나 아름다운 얘기여서, 아니면 쌀쌀한 바람 탓에 외로움이라도 타는 걸까? 요새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때문인 것은 확실하다. 그게 대체 뭐기에 이렇게나 머리 아프게 하는 것일까. 남이었던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가까워지기도 하고, 1분만 못 봐도 보고 싶던 이가 1초도 같이 있기 싫어진다. 소중하던 것이 하찮아지고, 보잘것없는 것이 대단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수많은 감정들은 어디서 그렇게 피어나는 걸까.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엔 감정싸움, 감정소모 등 그런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그런 단순한 문제였는데, 어느새 머리가 자라고 마음이 탁해져서 투명한 유리컵 속에 뿌옇게 흐려진 물을 담은 어른이 됐나 보다. 머리가 자라면서 감정을 이해하기도, 컨트롤하기도 힘들어졌다. 나를 지배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지고 있는데 그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니, 너무나 어려운 얘기일 뿐이다.

많은 감정들로 인해 본인 스스로가 힘들면서도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머릿속에서는 이성적인 내가 무수히 외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우습게도 이성을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그리하지 않겠다고 백번을 다짐해도 한번 피어오른 감정이 져버리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너무도 무기력하게 이끌려가 버린다. 참으로 우습다. 어른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어려졌다. 감정에 이끌려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끝내는 감정에 휘둘려져 버리는 나약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 감정을 끝내 쳐내지 못하고 그 감정이 식을까 두려워하는 더더욱 나약한 사람이다.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감정이 사라질까 그것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꼴이라니. 그렇기에 더 나약해지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내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더욱 진해지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저 놔두기만 할 수 없는 이것을 대체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점점 탁해지는 컵 속의 물을 다시 깨끗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격해지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들을 받아내기에 내 마음이 아직 너무나 작은 탓이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감과 그 감정을 받아내는 물 컵이라는 마음이 온전하지 않아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 감정을 소화할 수 있을 만한 마음이 없어서 이리로 저리로 휘둘리는 것이다.

대체 언제쯤 이 마음이 자라서 그 감정들을 다 받아내고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나 애석하게도 오늘 지금 이 순간조차 마음이 번진다.

/김륜현ㆍ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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