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위력
언어의 위력
  • 김순철
  • 승인 201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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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학수 (수필가, 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세 치 혓바닥으로 칠 척 사람을 죽이고, 펜은 칼보다 무섭다는 말도 있다. 바람소리를 들어도 추위를 예측하고, 손짓이나 목짓을 보아도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로 언어가 있는데, 언어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배가 아파서 구르다가도 맹장이 아니라는 의사의 진단으로 병이 금방 낫고, 자살을 기도한 실연의 처녀에게 ‘살고 보자’는 처절한 하소연이 그 여인을 살렸다는 구전도 있다. 아니, ‘사랑한다’는 네 음절이 남녀 인생의 한평생을 좌우하는 행복한 결혼에 이르는가 하면 ‘헤어지자’는 일시의 극언이 얼마나 뼛속 깊이 사무쳤기에 저주와 독심을 품은 이혼까지 연결되었겠는가.

문득 여류시인 이옥봉이 파주 목사에게 탄원한 글이 떠오른다. 洗面盆爲鏡/ 梳頭水作油/妾身非織女/郎豈是牽牛/리오. ‘세숫대야 물을 거울과 기름으로 청빈하게 살아가지만, 미천한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어찌 내 낭군이 소 도둑이리오.’ 남편이 억울하게 소 도둑의 누명을 쓰고 관가에 잡혀갔지만, 불과 스무 자의 시 한 편으로 무죄가 되었다는 사연이다.

시골 촌옹의 은행 출입에서 생긴 익살은 또 어떠한가. 통장(通帳)의 도장을 말한 창구직원의 어조 때문에 할머니는 자기 마을의 통장(統長)을 찾아 종일 헤맨 촌극도 웃지 못할 실화이다.

‘예’와 ‘얘’가 듣기에 따라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럴 수 있나’와 ‘그럴 수 있지’는 글자 한 자로 인하여 반대의 이미지가 속출함도 명심해야 할 언어사용의 단면이다. 천 길 물속은 잴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길이 없다고 했지만, 말과 글로써는 얼마든지 표현하고 능히 해결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토끼와 여우와 거북이가 떡 한 뭉치 때문에 술에 대한 설전을 벌인 것도, 결국에는 술수와 간교를 빗댄 언어예술의 지혜와 위력이며, 거북이의 노련한 인지와 위기에 대처하는 연륜과 혜량의 척도인 것이다.

요즘 선거판에서 오가는 언어들이 가관이고 밉상이다. 출산 경험이 없고 군복을 입어보지 않았으니 보육과 휴전선을 모른다는 심리학쟁이가 있는가 하면 ‘개콘보다 웃기는 찌질이’와 ‘ 뻘짓 그만 하고 차라리 쥐구멍에 들어가라’는 현대판 정치시인도 있다고 한다. 참말로 도살장 피묻은 칼보다 더 무섭고 난해한 언어 학살이고 난도질이며 문필의 자학이다.

내가 한 말은 삼년이면 들은 말은 백년이라고 한다. 입과 혀는 화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라는 말도 있다. 이제는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을 넘어서 남녀지일언중만금(男女之一言重萬金)이라고 깊이 새겨야 한다.

/수필가·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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