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현재 여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2012년 현재 여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 경남일보
  • 승인 201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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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순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되는 12월이다. 선거를 두 번이나 치르는 올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 말이 더 많이 사용될 것 같다. 특히 여성폭력 문제는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의 안이한 대응으로 수원의 한 20대 여성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을 보면서 2012년을 시작한 우리는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신고를 받고도 피해여성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남성에게 신고여부를 물어 그 여성이 다시 가해남성에게 감금 폭행을 당하다가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 통영의 아동 성폭력사건, 제주 올레길 여성 살인사건, 나주의 아동 성폭력사건들을 겪어야 했다.

가을과 겨울에 들어서도 이러한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지난 11월 24일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자들을 처벌해야 하는 검사가 절도사건 피의자를 성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언론에 보도된 끔찍한 사건들 외에도 여성에 대한 폭력은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검사의 피의자 성폭력사건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검사의 피의자 성폭력사건은 사건이 드러난 초기부터 가해검사가 수습중인 검사라는 말로 검찰의 꼬리 짜르기 시도에서 시작해 검찰의 축소·은폐 시도가 계속됐던 사건이다. 게다가 검찰이 가해검사를 ‘뇌물수수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성폭력’이라는 그 본질이 흐려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가해검사가 발 빠르게 피해여성과의 합의를 시도해 합의가 이뤄진 상태라 피해여성이 고소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아직은 친고죄로 묶여 있기 때문에 (11월 22일 성폭력관련 법률에서 친고죄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법률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2013년 3월이 돼야 하기 때문) 이 사건은 친고죄 폐지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육지책으로 뇌물수수죄를 적용했다고는 하나 두 번에 걸친 뇌물수수죄 영장청구와 기각과정에서 공방이 이어지면서 이 사건이 ‘위력과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사실이 희석돼 가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성폭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 근절을 위해 노력할 의지가 있다면, 우선 이 사건을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성을 뇌물로 제공한 것처럼 뇌물죄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성폭력을 피해자가 유발했다는 우리의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성폭력 가해자를 엄단하고 처벌해야 할 검찰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뇌물수수죄가 적용된다면 피해자에게는 뇌물공여의 혐의가 씌워지게 되는데, 성폭력 피해자가 순식간에 뇌물을 수수한 공범이 되어버리는 법 논리도 황당하거니와 여기서 뇌물은 여성의 몸이자 여성의 성이다. 이러한 뇌물죄 적용은 여성의 몸을 물건으로 보는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검찰을 포함한 사회 고위층의 비리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성상납, 성접대 등의 행태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몸을 물건으로 보는 사고가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인식 또한 일천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피해여성이 성관계를 유도했다는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과 함께 피해여성의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다는 소식까지 검찰의 태도는 이 사건을 축소하고 피해자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지,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을 주장할 때는 목소리를 높이던 검찰이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개념치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2012년이 저물어 가는 지금, 여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점검해 보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그래서 밝아 오는 새해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줄어들어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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