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전 시간 충분…한인 구할 수 있었다"
"충돌전 시간 충분…한인 구할 수 있었다"
  • 연합뉴스
  • 승인 201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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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아무도 돕지 않아 충격”…뉴욕 ‘자성론’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지하철역에서 50대 한인 남성이 다른 사람에 떼밀려 열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 알려지자 미국 사회에서 자성론이 일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나선 나이 든 사람이 덩치가 큰 젊은이에게 떼밀려 선로에 떨어졌는데도 주변의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은 것은 사회 윤리상 큰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근처에 10여명…최대 1분30초 시간 있었다” = 숨진 한기석(58) 씨의 열차에 치이기 직전 모습을 촬영한 프리랜서 사진기자 우마르 압바시는 5일(현지시간) NBC TV와 인터뷰에서 한 씨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구하려 하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압바시는 한 씨가 떨어지고 열차가 오기까지 약 22초의 시간이 있었고 자신과 한 씨 사이에 최대 18명이 있었으나 “그와 가까이 서 있던 사람들이 그를 잡아서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압바시는 또 열차에 치인 한 씨의 몸이 승강장으로 끌어 올려지자 주변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한 씨의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은 한 씨가 열차에 치이기 전까지 1분 이상, 최대 1분30초까지 시간이 있었다고 한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지하철 사망사건 그 후: 그 자리에 영웅은 없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망 사건을 전날에 이어 크게 다뤘다.

NYT는 이번 비참한 사건 이후 분노의 목소리가 각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면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게 한다고 지적했다.

전철이 다가오는 위험한 선로에 누군가 나를 밀쳐버렸다면, 혹은 그렇게 떨어진 사람 옆에 내가 있었다면 용감하게 구조할 수 있었겠느냐는 자문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압바시가 찍은 사진에 보면 승강장의 열차가 들어오는 쪽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속도를 줄이라며 손짓을 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사건 현장에 있던 에드밀슨 재비어(49)는 “그 사람들 중에 한 씨를 끌어올릴 만큼 건장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나”라고 반문했다.

현장에 있었던 패트릭 고메즈(37)는 “난장판이었다. 내 생각엔 사람들이 그저 공황상태였다. 뭘 해야 할지 몰랐고 몸이 얼었다”며 도우지 못해 “정말 부끄럽다”고 말했다.

◇“찍은 사진기자보다 실은 신문이 문제” = 이번 사건은 또 뉴욕의 한 신문이 한씨의 사망 직전 장면을 신문에 크게 실으면서 더욱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선정적인 사건 사고를 주로 다루는 일간 뉴욕포스트는 전날 4일자 신문 1면 전면에 압바시가 촬영한 한 씨의 사진을 ‘(죽을) 운명: 지하철 선로로 밀려 떨어진 이 사람이 곧 죽는다’라는 제목과 함께 실었다.

사진이 게재되자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사진을 찍은 압바시는 자신이 한 씨를 끌어올리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대신 재빨리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 열차에 정지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압바시는 당시 자신은 한 씨로부터 수백 피트(1피트=30.48cm) 가량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나로서는 그를 구할 길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22초는 긴 시간이지만 내가 (한 씨를 향해) 달려가던 과정에서 한 씨를 밀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며 “나도 승강장으로 밀쳐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벽에 등을 기대고 대비를 하느라고 시간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에 대해 “그들은 현장에 없었다. 그 일이 얼마나 순식간에 일어났는지 그들은 모른다”며 “‘탁상공론만 하는 비평가(armchair critic)’들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항변했다.

반면 목격자 고메즈는 “그는 승강장 남쪽 끝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찍을 시간이 있었으면 왜 안 도왔나? 그는 기관사의 주의를 끌기 위해 플래시를 터트렸다고 하지만 믿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사진에 대한 비판 대부분은 압바시가 아니라 이 사진을 게재할지 말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결정할 수 있었던 뉴욕포스트 편집자들 에 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도 뉴욕포스트가 압바시와 같이 초를 다투는 복잡한 상황이 아니라 사진기자가 찍어온 사진을 다루는 일상적인 결정을 하면서 “지켜보기 역겨운 상업적인 계산”에 이끌렸다고 비판했다.

싱크탱크 포인터 연구소의 저널리즘 연구원인 제프 손더먼은 “사진기자와 다른 사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하더라도, 뉴욕포스트가 그 사진을 어떻게 했어야 하느냐는 별도의 문제”라고 평가했다.

◇범인은 마약판매 전과 노숙자 = 뉴욕 경찰은 한 씨를 선로로 밀쳐낸 혐의로 체포된 나임 데이비스(30)를 2급 살인 혐의로 이날 기소했다.

수사 관련 여러 소식통들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경찰 신문에서 한 씨가 자신을 괴롭히고 가만히 놔두지 않아 밀쳤다며 범행을 인정했다고 ABC TV가 보도했다.

데이비스는 정신병 치료를 받은 적은 없으며 마약 판매 등의 경범죄로 체포된 전력이 있다고 경찰 소식통들은 전했다.

경찰은 데이비스가 한 씨를 죽일 의도가 있었는지 또는 말다툼 끝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한 씨가 변을 당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또 한 씨가 지하철역 회전문에 뛰어들어오면서 데이비스와 부딪혀 다툼이 시작됐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데이비스는 일정한 주거가 없는 노숙자로 사고 현장 인근 록펠러 센터 주변에서 가판 상인들의 심부름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와 데이비스 간 다툼이 벌어진 경위에 대해서는 보도들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목격자 재비어는 NYT와 인터뷰에서 “한 씨가 흑인에게 ‘이봐 젊은이, 자네가 여기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며 그가 옳은 일을 하려고 나섰다고 말했다.

뉴욕포스트도 보안당국 소식통들을 인용해 한 씨가 데이비스를 가라앉히려 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다른 목격자 리 윙어스(26)는 한 씨가 술냄새를 풍기며 “휘청거리면서 용의자에게 다가가면서 ‘이봐! 이봐’라고 계속 말했다”며 데이비스에 대해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용의자가 처음에는 차분히 ‘나는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르니 내 앞에서 꺼져’라고 말했다”며 이후 말다툼이 심해져 겁을 먹은 자신과 다른 승객들이 그 둘로부터 멀어졌다고 덧붙였다.

◇“한 씨, 친절하고 주변 잘 도우는 사람” = 퀸스 엘름허스트에 거주하던 한 씨의 부인과 딸 등 유족은 이번 참변과 뉴욕포스트가 게재한 잔혹한 사진에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NYT가 전했다.

퀸스 한인교회의 조원태 목사는 이날 오후 한 씨의 부인·딸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유족들이 “그 사진을 보고 나서 잠을 못 이뤘다”며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씨의 딸(20)은 “‘누군가가 그 몇 초 안에 아버지를 도와서 끌어올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끝난 일은 끝난 것“이라며 생면부지인 뉴욕 시민들이 커다란 정신적 지원을 보내줬다고 밝혔다.

딸은 부친이 평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망설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돕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 씨의 한 이웃은 데일리 메일에 한 씨가 열심히 일하며 항상 친절히 인사하는 ”주위를 도우려 했던 좋은 사람“이라며 ”여기 누구도 이 일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망한 한 씨는 지난 1975년 미국 아칸소 대학으로 유학을 온 뒤 맨해튼에서 세탁업을 해왔다.

하지만 수년 전 일을 그만두었으며 아내마저 5년째 척수염을 앓아 생활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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