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온 국민이 함께 가난했던 60~70년대, 연탄보일러가 있는 집이면 제법이나 살 만했을 터인데 아이가 여섯이나 되는 집에 연탄 한 장이라도 아껴볼 요량으로 친정어머니는 납작한 럭비공처럼 생긴 아연 소재의 물통인 유단포를 어김없이 우리가 자는 이불 밑에 넣어 주셨다. 보슬보슬 눈이 내리는 으스름 저녁 무렵이면 유단포에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부어 이불 안에 넣어두면 6~7시간 정도는 거뜬히 온기를 유지했기 때문에 방의 윗 공기는 찹찹하고 이불 밑은 따뜻해서 잠이 솔솔 잘 왔다. 유단포와 찰떡궁합이었던 빨갛고 파란 엑스란 내복까지 입으면 한겨울 추위도 걱정 없었다. 그 유단포는 전기장판이 나오면서 슬그머니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요즘의 전기담요에 비하면 훨씬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인데 아직도 시중에 팔고 있을까?
어렸을 적부터 절약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시집 오고 지금까지 우리집 겨울철 실내온도는 18도를 넘기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 아파트가 중앙집중식이 아니라 개별난방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아들과 딸은 중앙집중식 아파트에 살아 겨울에 반팔 입고 거실에 앉아 있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었다. 그랬던 그들도 이제 18도에 길들여져 으레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이면 내복부터 찾는다. 어쨌건 우리 가족은 겨울철 난방온도를 18도로 유지해서 아낀 난방비를 지난해부터 노인복지원에 매달 기부하고 있다.
물론 의료기관, 사회복지시설, 유치원, 군사시설, 종교시설은 제외된다는 전제하이다. 진작 그리하였으면 숫자 18을 좋아하는 엄마를 덜 원망했을 것을. 다른 집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동절기 대규모 정전사태 등이 초래되지 않도록 18도를 좋아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시대가 좋아 빨간 엑스란 내의도 아닌 히트텍처럼 얇고 예쁘면서 보온성까지 뛰어난 제품이 많다. 내복도 입혀 보고 다른 사람도 돌아볼 줄 아는 멋진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생활 속 에너지 절약 실천에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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