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9>
오늘의 저편 <239>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마 아이 듣는데 무슨 이야길 하신 건 아니세요?” 급기야 진석이가 앞마당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던 그때부터 그는 필중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라니?”

아들의 말뜻을 잘 알고 있는 여주댁은 눈에 불부터 켰다.

“하시지 않았으면 됐어요.”

진석은 더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는 고질병이 재발하듯 살아 있는 자신을 또다시 원망하고 있었다.

“행여 너 누이와 날 의심하지 마라.”

여주댁은 지나가는 말로라도 아들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고 단호히 말했다,

“어머니 빨리 서울로 가십시다.”

외출복을 대층 챙겨 입는 둥 마는 둥 한 민숙은 앞장섰다. 서울로 간다고 아들 찾을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선 서울로 가 봐야 하는 것이었다.

“암자 같은 델 찾아봐.”

길 떠나는 아내의 등에다 대고 진석은 그렇게 힌트를 주고 있었다. 필중이와 용진이의 공통분모를 너무 잘 알고 있던 그로선 아들이 지금 혼자 있고 싶을 것이라고 그렇게 점을 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꼭 찾고 말테니까.”

민숙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목을 깊이 끄덕였다.

손자 생각에만 최면이 걸려 있던 여주댁은 동구 밖까지 갔을 때에야 아들한테 서운하게 했음을 떠올리며 아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기 가는 사람 순희 엄마 아니냐?”

눈물을 훔치던 여주댁은 맞은편 길을 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친정에 다니러 가는 길인가 봐요.”

건넛마을로 향하는 정자를 본 민숙이도 맞장구를 쳤다. 뒤늦게 서울 집으로 살림을 합친 그녀는 딸과 십년 터울로 낳은 사내아이의 손을 꼭 잡고 가고 있었다.

상대는 여주댁과 민숙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가던 방향으로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순희는 저래 남동생이 있으니 외롭지 않겠구먼. 동기 하나 없는 우리 용진이 외로워서 어쩌누?”

여주댁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묵혀왔던 말을 푸념처럼 늘어놓았다.

민숙은 못들은 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실컷 떠돌아다닌 용진은 이제 학동으로 오고 있었다. 고모와 할머니의명문고 타령에 귀에 못이 박일 정도였지만 공부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다. 이유 없이 자꾸만 짜증이 났고 무작정 엇나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입시를 보지 않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니었다.

‘누가 왔지?’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혼자 있던 진석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짖어대는 점박이를 흘긋 보며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는 것을 가늠하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