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잡는 아내
쥐 잡는 아내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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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원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2000년 1월은 유난히도 추웠다. 필자는 인사발령을 받고 진주로 향했다. 가족을 뒤로하고 나아가는 발걸음은 삭막하기만 했다. 학교 사택을 배정 받았는데 너무도 낯설었다. 방과 거실을 살펴보다 부엌으로 갔다. 쥐 소리가 들렸다. 부엌 마루 밑에 쥐새끼들이 사는 모양이다. 그때 내 마음은 더욱 냉기가 흘렀다. 뒤따라온 아내가 “여보, 출근하세요.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을 테니, 일찍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퇴근해서 와보니 집 내부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아내가 장도리를 빌려와서 부엌에 있는 마루를 해체하고 쥐를 8마리나 잡고서는 부엌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던 것이다.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이 했어야 할 일을 아내가 거뜬히 해낸 것이다. 아내의 억척스럽고 담대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남편의 삭막한 심정을 꿰뚫어본 아내가 더럽고 징그러운 쥐를 8마리나 잡은 까닭은 남편에게 용기를 주려는 심산이었다. 저녁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우리 집으로 착각할 정도로 훈훈함이 감돌았으며, 그때 아내가 보석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쥐 잡는 아내는 누구인가? 장도리로 마루를 뜯어내고 쥐새끼들을 하나하나 잡아내는 아내를 상상해 보라. 아내이기 때문에 쥐를 잡을 수도 있다고 하자. 세상의 아내들이 다 그러할까? 연약한 아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감동이 밀려온다. 밥상이 들어왔다. 제법 그럴싸한 한 상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아내가 입가에 웃음기를 띠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훔쳐보고는 “진주는 창원보다 물가도 싸고 공무원들이 많은 도시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도 양반처럼 보이고 괜찮은 동네 같아요. 여보, 이제 주말부부하면 신혼기분이 날지 몰라요”하면서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 그때 갑자기 ‘연탄장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눈썹이 거의 없는 소녀가 커서 시집을 갔다. 남편의 직업은 연탄장수였다. 시집간 날부터 남편 몰래 먼저 일어나 눈썹화장을 한 후에야 남편을 깨우곤 했다. 가난했지만 그저 연탄 배달하는 남편을 내조하며 사는 것이 행복했다. 어느 날 여름, 남편은 몸이 아파서 아내가 수레를 끌고 남편이 뒤에서 밀며 배달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무척 더웠고 힘들었다. 아내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 남편은 아내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내의 눈썹 부위만 빼고 그 주위를 정성껏 닦아 주었다. 남편은 아내가 눈썹이 없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지만 비밀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눈치 챈 아내는 이해심 많은 남편을 바라보며 행복에 겨운 눈물을 글썽이었다.

부부는 숨김이 없어야 하지만 때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만이 가능하다. 쥐 잡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연탄장수’의 마음을 가진 남편으로 거듭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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