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1>
오늘의 저편 <241>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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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오는 것일까? 가는 것일까? 아무튼 한번에 1초씩만 오고 가면서 기나긴 세월을 일궈내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돈벌이를 하러 시내나 서울로 떠나버리곤 해서인지 1960년대도 막바지에 이르면서 학동엔 왠지 모른 나른함이 감돌았다.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는다는 건 서글픈 일일까. 이제는 그 누구도 민숙에게 서울로 가라고 등을 떠밀지 않았다.

민숙은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는 담 아래쪽을 따라 사방으로 꽃을 가꾸어 왔다. 눈이 가는 곳 앞쪽에서부터 키가 작은 채송화와 봉선화들은 여름 속에 앙증맞게 웃어댔다. 봄이 되면 영산홍의 분홍빛 웃음에 집안이 환해지곤 했다.

가을이 되면 울안으로 들어온 코스모스가 하늘거렸고 겨울엔 발가벗은 가지 위로 하얀 눈이 솜이불 되어 살며시 내려앉았다.

여느 때처럼 하루해가 뒷산으로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부엌문 앞에서 알짱거리던 삽사리가 별안간 짖어댔다.

삽사리는 점박이가 생을 다한 후 새로 얻어온 삽살개 종류였다. 온몸이 털투성이여서 여름철엔 보기 딱하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녀석을 위한 월동준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막 설거지를 끝낸 민숙은 치맛자락에 손의 물기를 닦으며 대문간으로 나갔다.

“이 녀석아, 달을 보고 짖었냐?”

누구냐고 물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민숙은 삽사리에게로 목을 돌렸다.

삽사리는 대문에 코까지 들이대며 짖어댔다.

‘다 저녁 때 누구지?’

대문을 열고 만 민숙은 놀란 눈을 홉떴다. 첫돌은 지난 듯 보이는 아기가 포대기에 고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새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이끌림을 견뎌내지 못하고 아기를 조심스레 아기를 안았다.

‘안 돼!’

민숙은 그녀 자신에게 비명을 질렀다.

‘업둥이는 내치는 법이 아니다.’

그녀 자신의 반박이었다.

‘우리 사정을 잘 알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우리 사정이 어때서?’

‘몰라서 그러냐?’

‘늦둥이삼아 키워. 키우다 보면 적적함도 달래질 것이고.’

‘우리 외로움을 달래자고 애한테 멍에를 씌울 순 없어.’

엉겁결에 안아버리고 만 새 생명에게 여자로서의 모성애가 꿈틀거리고 있어서인지 민숙의 온몸엔 식은땀까지 나고 있었다.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삽살아, 빨리 아기 엄말 찾아봐.”

민숙은 아기를 안은 체 동구 밖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삽사리는 민숙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주인의 앞뒤 없는 달음질에 놀라 덩달아 뛰는 것인지 마냥 신나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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