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젖줄, 대한민국의 습지를 찾아서 <4>
생명의 젖줄, 대한민국의 습지를 찾아서 <4>
  • 이은수
  • 승인 2012.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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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난 개발 위기의 함안 습지
 
▲유전늪 전경
 
경남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함안군의 습지는 각종 난개발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 습지(약 37곳)는 식생경관이 탁월해 수생식물의 보고이자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의 서식처 역할을 톡톡히 했으나 쓸모없는 땅이라는 그릇된 인식하에 개발행위가 이뤄지던 지난 80년 사이에 농경지 개간, 하천개수, 택지, 농장, 공단, 도로 등으로 대거 소실됐다. 더욱이 7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최대 가시연 군락지였던 ‘유전늪’은 우후죽순 생겨난 공장에 면적이 급감하며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칠서공단의 경우 늪지대를 매립해 100만평에 달하는 산업단지를 조성한 예다. 함안 일대는 남강 본류의 범람원이 위치하고 있어 습지가 넓게 발달했으나 개발이란 미명아래 경남에서 습지 소실면적이 가장 넓은 곳으로 습지보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발 미명 아래 사라져가는 ‘유전늪’

남해고속도로 장지IC에서 내려 함안군 군북면 유현마을에 다다랐다. 첫눈이 내린 농촌 들판은 온통 순백색으로 변했다. 함안환경보전협회 상임이사로 있는 육근희씨의 안내로 먼저 유전늪을 둘러봤다. 가시연 군락지로 한때 36만7000㎡(10만여평)에 달했던 습지는 이미 주변에 수십개의 공장들이 애워싸며 겨우 1/5정도만 남았다. 길 건너편 유전늪과 길게 맞닿은 곳에는 거대한 공장 굴뚝에 희뿌연 연기가 바람에 계속 날리고 있고 바로 앞에는 산더미처럼 쌓은 고철을 집게차로 처리작업을 하고 있다. 기계음 및 화물차량 소리까지 더하여 함안군 3대 습지가 맞는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또한 수년전부터 번식력이 강한 연이 급속히 퍼져 수생식물의 종다양성이 크게 위협 받고 있다. 습지주변에 심은 버드나무 역시 육상화를 초래하며 늪지보호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현장취재에서 유전늪 인근 도로변부터 습지내로 수십톤의 큰돌덩어리와 자갈 등 매립행위가 이뤄진 것이 목격됐다. 이대로 두면 습지가 반토막 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당국은 뒷짐만 진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유전늪 일대에 난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며 습지훼손이 도를 넘은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공장을 확대하는 과정에 습지를 무단으로 훼손하다 적발되기도 했지만 처벌이 경미한 점을 악용해 공장부지로 사용하며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형적인 공장이 들어선 습지 둘레 곳곳에는 흙이나 돌들을 매립해 뻘층이 사라지고 수생식물과 어류가 급감하는 등 마구잡이식 개발행위로 유전늪이 고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후손에게 물려줄 함안군의 소중한 자산인 습지를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된다며 개발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질날늪과 함께 함안군 3대 습지로 손꼽혔던 '유전늪'이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매립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함안지역 습지, 경남서 최다 소실

함안 일대는 남강 본류의 범람원이 위치하고 있어 습지가 넓게 발달했으나 경남에서 습지 소실면적이 가장 넓은 곳으로 현재 번개늪, 질날벌, 대봉습지 등의 습지가 분포하고 있다. 이 일대의 습지 총면적은 1963년에 531만25㎡이었으나 2004년에는 152만900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전체면적의 70%인 약 378만㎡의 습지가 소실됐다. 번개늪은 1963년 81만5000㎡에서 2004년 72만7000㎡으로, 대봉습지는 33만3000㎡에서 22만9000㎡로 감소했다.

질날늪은 17만4000㎡에서 4만9000㎡로 감소했다. 유전늪은 1963년에 19만3000㎡이었으나 유전늪 주변에 공장들이 생기면서 매립되어 2004년에는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보고서까지 나올 정도다. 질날벌 또한 면적이 감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와 더불어 신전안늪, 안늪, 남산벌, 윤회벌 등과 같은 소규모 습지들이 소실됐다. 칠서공단 100만평은 늪을 매워 공단을 조성한 사례다.

함안 일대에서 이러한 습지 면적들의 감소는 농경지 이용을 위한 매립과 더불어 주거지와 산업단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많은 면적이 감소된 것으로 판단된다. 부산대 연구팀은 창녕군과 우포늪 일대가 농경지 확대로 인해 습지가 소실되었다면 함안군의 경우 농경지와 공단조성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백조의 휴식처 ‘대평늪’

유전늪과 질날벌을 거쳐 대평늪에 이르렀다. 때마침 겨울을 나기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한 천연기념물 제201호 큰고니가 혹독한 대설추위가 풀리자 한가로운 모습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일까. 하얀 눈이 내려앉은 대평늪은 산자락이 포근히 감싸안은 가운데, 잔잔한 호수에 인적조차 더물어 한 껏 여유로움을 선사했다.

함안 대송리에 있는 대평늪은 천연기념물 제346호(3만8160㎡)로 1984년 지정됐다. 함안 대송리 습지는 남강을 끼고 발달했으며, 수심은 1.5∼2m내외다. 늪지와 습지식물들이 날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지만 법수면의 늪지는 이곳에 광주 안씨가 정착하면서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후손의 번창을 위해 늪지대를 보존하여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하니 선조의 혜안을 엿볼수 있다. 이곳에서 조사된 늪지식물로는 보풀, 자라풀, 줄풀, 세모고랭이, 창포, 개구리밥, 물옥잠, 나도미꾸리 낚시, 애기마름, 마름, 가시연꽃, 붕어마을, 털개구리미나리, 노랑어리 연꽃, 통발, 뚜껑덩굴 등이 있으며, 식물성 플랑크톤인 먼지말류와 돌말류도 발견됐다. 이 늪지는 우리나라에서 늪지 식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한 유일한 곳으로 늪지식물상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함안군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작년 1억·올해 2억1000만원을 지원받아 휴식공원과 목재 탐방로(연장 500m)등을 조성중에 있다. 아울러 순찰대 편성, 수질오염 예방, 습지식물 보호 활동도 병행해 유전늪과 대조를 보였다. 또한 습지위로 철탑의 고압선이 여러줄 지나가 새들의 비행 등에도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함안군 관계자는 “주말에 가족나들이객 7∼80명이 대평늪을 꾸준히 찾고 있다”며 “탐방로와 둘레길 등을 갖춰 지역민들의 자연생태 휴식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습지 공공성 인정해 보전대책 마련돼야"
육근희 함안환경보전협회 상임이사

“습지는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미래의 소중한 자원입니다.”

함안환경보전협회 육근희 상임이사는 개발논리에 밀려 습지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같이 말했다.

육근희 이사는 함안에서 태어나 줄곧 고향을 지키며 습지보호 등 환경보전에 앞장서고 있는 환경지킴이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습지가 쓸모 없는 땅이 아니라 노폐물을 제거하는 신장같은 생명의 보고로 잘 관리해서 후손에게 물려줄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함안군이 습지최다 훼손지역의 불명예를 안은 것은 환경자산에 대한 철학의 빈궁탓”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유전늪은 79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가시연 군락지로 명성을 날렸음에도 개발이란 미명아래 관심 밖으로 사라졌고, 근래에는 개발행위가 도를 넘어섰다”며 “사유지라고는 하나 공공성이 강한 만큼 대평늪처럼 유전늪을 보전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외의 경우 습지보전지역의 훼손시 법적 처벌이나 벌금 등의 제도가 잘 구성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별다른 처벌규정이 없어 습지에 대한 훼손이 심각한 상황이다. 습지보전법은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지 못한 습지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으며 매립, 간척 등으로 습지훼손을 막을 수 없는 본질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따라 “동판과 산남의 3개 저수지를 연결한 주남저수지처럼 대평늪·질날늪·유전늪을 하나의 벨트로 묶어 보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문제가 되고 있는 습지의 상당 부분이 개인소유가 많다”며 “습지가 공공성을 갖는 만큼 논 직불제처럼 정부차원에서 지주들에게 보전금을 지급해서 개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사진=황용인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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