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식탁 동반자
한국인의 식탁 동반자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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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학수 (수필가, 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자기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리는 일은 인간의 원초적 기본이다. 만상이 생멸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이 있고 나서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부자(父子)가 있으며, 부자가 있은 뒤에 형제가 있다고 했으니 이것 외에 또 무엇이겠는가.

억설일지 몰라도 그 다음에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인간의 삶 그 자체이다. 새삼스럽지만 한국인의 식탁에서 밥이 왕이라고 하면 국(羹)은 왕비이며 반찬은 왕자이고 국민이라고 할까. 실상 국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고, 반찬은 없으면 수저를 들기가 싫으며, 그 가운데서도 김치가 보이지 않으면 아쉽고 허전하여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두말없이 김치는 고래로 한국인에게 필요한 한국인의 식품이며 우리 나라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반찬임에 틀림없다. 식품영양학에 따른 생물학적 이론이나 보충 증명은 전문가의 몫이지만, 일반적인 영양면에서 따져보아도 무기질과 비타민의 공급원이다. 이뿐만 아니라 젖산균의 제공으로 정장작용을 도와주고 식욕을 증진함은 재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물론 지방이나 풍속, 가족이나 개인의 식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보아 그 속에 드는 조미료만 치더라도 한국인의 체질과 구미에 꼭 알맞은 자연산 양념들이다. 실로 김치는 한국인의 식상에서 약방의 감초격이며 반찬의 대보라고 해도 무슨 손색이 있으랴. 제아무리 식전방장(食前方丈)에 용미봉탕(龍尾鳳湯)이나 수륙진미(水陸珍味)라도 거기에 김치가 빠지면 그것은 사공 없는 나루터요, 각시 없는 침실이며 물기 없는 논바닥과도 같을 것이다.

언젠가 월남에 파병된 한국 병사의 편지에서 어머니의 고운 솜씨가 배어 있는 김치 한 단지만 보내 달라는 간곡한 사연이 생각난다. 뒤이어 미국으로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내 나라 김치보다 더 좋은 반찬은 이 세상에서 또 어디 있느냐고 김치 예찬론을 펴지 않았던가.

필자는 김치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다. 포장집 나무의자에 걸터앉아서도 서슴없이 김치를 주문하고, 점잖고 화려한 맥주파티에서도 새큼한 김치를 챙기는가 하면 초면의 횟집에서도 김치가 없으면 그만 식욕이 사그라진다.

공허한 비약일지 몰라도 김치의 속성과 상징은 서민대중이고, 서민대중의 반찬은 바로 시고 짜고 매큼한 합성배합의 김치이다. 진실로 김치의 이미지는 대통합을 의미하고, 국민의 대통합은 원칙과 약속을 바탕으로 신뢰와 정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온갖 화술로 입술을 비꼬며 돈벌이한 변호사는 말할 것도 없고,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최상의 권력을 누린 사람이 어찌 서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인의 담백하고 순박한 밥상, 한국 식탁의 영원한 동반자는 한국 여인의 아름다운 손으로 빚은 새빨간 김치가 최고다.

/수필가·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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