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4>
오늘의 저편 <244>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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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 그건 또 무슨 병인데?”

민숙은 뜨악한 얼굴로 여자를 보았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병이기에 사람의 코를 저래 문드러지게 할까?’

속으론 나병보다 더 무서운 병도 있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저도 잘 몰라요. 남자들과 많이 자면 생기는 병이라는 것밖에는.”

여자는 다시 아기를 맡아달라고 사정했다.

“그럴 수 없어요.”

여자의 사정이 딱하게 여겨지긴 했지만 민숙은 목을 가로흔들었다.

“사람하나 살려주시는 셈 치고 제발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아기를 땅바닥에 그대로 두고 종종걸음을 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폐병쟁이란 말이요!”

멀어져 가는 여자의 등에다 대고 민숙은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여자가 우뚝 섰다.

민숙은 일부러 기침까지 만들어서 몇 번 쿨룩거렸다.

여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기를 안고 갔다.

1970년대가 무르익어가면서 도로는 많이도 변해갔다. 지지대고갯길도 무슨 산업도로 건설이니 하며 확장공사를 한 덕택에 크고 작은 차량들이 쉴 새 없이 달리기를 해댔다.

명문대학을 졸업하여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한 용진은 마음 좋은 여자를 만나 결결혼도 했다.

학동엔 이제 민숙이만 남아 있었다. 마을 앞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집들이 절만 이상 수용이 되어버렸는데 뒷산자락에 물려 있던 그녀의 집은 해당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보상을 받은 학동 사람들은 얼씨구나 하고 서울로 이삿짐을 쌌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뒷산자락에 앉아있는 낡은 기와집 한 채에 눈길조차 주는 일이 없었다. 물론 거주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누군지의 여부에도 티끌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민숙이와 진석은 조금은 마음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공공연하게 얼굴을 내놓고 외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울안에서는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세상에 나만큼 복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

햇빛이 따사로운 봄날 민숙과 나란히 영산홍에 취해 울안을 거닐던 진석은 불쑥 그렇게 말했다.

“여기 있잖아요?”

민숙이도 질 새라 복이 많다고 자랑했다.

혼자 지내는 민숙은 그러나 늘 진석과 함께 있어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의 숨을 먼저 거두어 가소서.’

일흔 고개에 들어선 민숙은 새벽마다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빌었다. 태어나고 소멸되어 가는 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남편보다 한 달 정도만 더 살게 해달라고 빌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였다.

아침부터 까치가 짖어대더니 아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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