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장님의 독백
어느 사장님의 독백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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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원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며칠 전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장님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지금 중소기업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애환을 쏟아냈다. 토요일 아침, 아무도 없는 공장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배우처럼 독백을 한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발 경제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요동치는 주변 환경변화로 이런 독백이 익숙하게 된 건 오래전부터다. 물량이 떨어져 가동을 멈춘 기계를 바라보면서 한숨소리 그칠 날이 없다. 그것은 은행 융자로 거금을 주고 도입한 장비들이 놀고 있기 때문이다.

더 걱정은 물량이 떨어진 것은 고사하고 이미 주문받은 물량의 원가조정 압력 때문에 억장이 무너질 판이다. ‘차라리 접어 버리고 친구회사 종업원으로 들어가 월급쟁이 노릇하는 것이 속 편할지 몰라! 아니면 구멍가게나 할까’하면서 독백할 때 가슴은 새까맣게 타 들어간다. ‘아니지,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투자한 것이 얼만데 지금 이런 나약한 생각을 하다니’ 또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는 공장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공장 안에 있는 기계들이 분주히 돌아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두 손을 높이 들고 위를 향해 독백한다. ‘IMF 때도 잘 버텨냈는데 지금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견딜 수 있어. 벼랑 끝에 선 나에게 언젠가 날개 달 일이 있을 거야.’ 이것이 지금 중소기업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역경의 현주소이다. 갑자기 위기의 기업에 희망이 솟아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중견기업에 불이 났다. 불길이 너무 맹렬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평생 기업을 세우기 위해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사장님은 불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너무 다행이야!’ 옆에 서 있던 비서는 깜짝 놀라며, 혹시 사장님이 실성한 것은 아닌가 하고서는 사장님께 다가서서 “사장님 무엇이 다행입니까?”, “정말 다행이지! 어제 우리 식구들 월급이라도 주고 나서 불이 나길 다행이지.” 그때 비서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공장이 잿더미가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종업원들의 생계를 먼저 생각하는 사장님의 진심 어린 애틋한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전해들은 노사는 주저 없이 사비를 털어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그후 노사의 단합된 저력은 잿더미가 된 공장을 단번에 가동시켰다. 사장님의 종업원 사랑은 워크숍 백번한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었고, 그로 인해 화재 이전보다 더 잘된 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요사이 중소기업을 방문해 보면 기업환경이 좋아지고 있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어떤 회사는 현장에도 냉난방시설이 되어 있을 정도다. 중소기업이 이렇게 좋아지기까지는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고, 그 고통은 오히려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으며 어지간한 외환에도 버틸 수 있게 했다. 여성 CEO도 더러 만난다. 이제는 기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장님들의 독백을 주목하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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