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5>
오늘의 저편 <245>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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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시골로 내려가서 살고 싶습니다.”

암으로 아내를 잃고 만 용진은 불현듯 학동으로 전화를 걸어 귀향의 뜻을 밝혔다.

“안 된다.”

딱 잘라 거절하는 민숙의 눈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쯧쯧, 가여운 사람,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옆에서 챙겨주는 이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저 노릇을 어찌할꼬?’

“어머니, 지금 출발합니다.’

용진은 당장 달려올 것처럼 떼를 쓰듯 말했다.

“어미가 서울로 가마.”

당황한 민숙은 그렇게 둘러 댔다.

“오지 마세요.”

용진이도 딱 잘라 거절했다. 아내와의 추억들이 어려 있던 서울 집에서 떠나있고 싶은 것이었지 어머니의 정이 간절하게 그리운 건 아니었다. 외아들인 유민이마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버린 터여서 명예 퇴직한 용진으로선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는 셈이었다.

‘오라고 할 걸.’

아들과의 통화를 끝낸 민숙은 불현듯 중얼거렸다.

시대가 변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병도 무슨 유행을 타는 것일까. 두렵고 혐오스러움 병으로 일컬어지던 결핵과 나병에 관한 이야기는 쑥 들어가고 있었다. 좋은 약이 나와 있는 데다 발병률도 낮아서인지 나병을 심각한 병으로 간주하지도 않고 있었다.

대신 암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차량들이 많아지고 있어서인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도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민숙은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먼저 사망하게 될 경우 아들이 읽게 될 아주 긴 편지였다.

남편에게 먼저 임종의 순간이 찾아오면 태워버리고 말 편지여서 평소에는 장롱 속에 고이 넣어두었다. 외출할 땐 속곳에 만들어 둔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아범아, 미안하다. 사람의 나이가 쉰이 넘으면 감당 못할 일이 없다고 믿기에 이런 편지를 남긴다. 이 어미가 먼저 죽고 난 다음 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거든 그 시신을 잘 거두어서 뒷산에다 뿌려다오.’

민숙은 그렇게 편지를 마무리해 두었다. 시누이마저 세상을 떠난 뒤여서 평생도록 숨어서 지낸 가여운 남편의 시신을 거두어 줄 사람은 역시 아들밖에 없어서였다.

편지를 다 읽은 용진은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의 뼛가루가 든 상자를 열어 한 움큼 움켜쥐었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눈물에 아롱진 망막의 파문 사이로 가루가 되어 풀풀 날리는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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