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유치원·어린이집 시위에 대한 소고
사천유치원·어린이집 시위에 대한 소고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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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재 (취재2부 차장)
지난 17일 오전 10시30분 사천의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이 사천교육지원청 앞에서 ‘단설유치원 신설 반대’ 시위를 벌였다. 드물게도 일선 교육자들이 주무관청을 상대로 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구구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상급기관을 상대로’ 하는 동정론과 ‘결국 제 밥그릇 지키기’란 시각이 엇갈린다. ‘상급기관을 건드려 좋을게 없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교육현장의 문제를 교육적으로 풀어가길 바라며 이날 시위가 남긴 몇 가지를 적어 본다.

#1. 사천교육지원청 앞

시위(示威)의 사전적 정의는 위력이나 기세를 드러내어 보임이다. 기세를 보여 상대를 겁 먹게 해 뜻을 관철하고자 시위를 벌인다. 우리나라는 정당한 시위를 헌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집회를 가지고자 할 때는 사전에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경찰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지켜야 할 사항을 알려주고 준수할 것을 당부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부과 등 제재가 따른다.

지난 17일 사천교육지원청 앞 도로에 어린이들을 싣고 달리던 노란색 승합차와 버스가 모여들었다. 사천교육지원청이 지난 2월 폐교된 선진초등학교에 단설유치원을 신설한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세 과시로 교육청을 압박하기 위함인지 각 원이 운행하는 차량들을 교육청앞 도로에 줄지어 세웠다. 40여 대 가량의 차량들이 이중 주차로 수백m를 점거한 것이다. 이들이 점거한 도로를 피해 일반차량들은 교통경찰의 안내속에 중앙선으로 다녀야 했다. 그러나 군중의 힘(?)은 대단했다. 오가는 차량의 따가운 시선과 경찰의 단속은 뒷전이다. 나의 올바름을 주장하는 자리에 불법주차라는 작은 법은 무시해도 된다는 듯 나중에 과태료를 내겠다며 버텼다. 어린이를 태우는 노란색 차량에 대한 일반운전자들의 배려를 외면하는 처사는 지탄의 대상이다.

우리 속담에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우리 자녀들이 처음으로 가르침을 받는 교육기관이다. 인성이 형성되는 영·유아를 교육하는 기관에서 백주대낮에 버젓이 불법을 자행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교육자의 시위는 일반인의 시위와는 달라야 한다”고 따끔한 질책을 남겼다.

#2. 사천교육지원청 내부

“일선 유치원에 한번 나와 보십시오. 유치원은 원생 모집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원생 10명이면 교사 1명의 월급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일선 유치원들은 모집 기간이 끝났는데 정원을 못 채운 곳이 많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청은 모든 것을 국가가 제공하는 단설유치원을 신설한다니 우리가 그냥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날 집회에 이어 유치원과 어린이집 대표자들이 교육장실을 찾았다. ‘사천시 유치원의 경우 기존 시설의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데 새로운 공립유치원을 신설하는 것은 예산 낭비다. 타당성 있는 재수요 조사와 공청회를 바란다. 통폐합 공립유치원 4~6명의 교사를 위해 관내 9개 사립 유치원과 140개 어린이집 종사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단설유치원 신설은 부당하다. 타당성 있는 재 수요조사와 공청회를 통해 체험장이나 특수학교 등으로 수용계획을 변경해 달라’는 건의서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천교육청의 신설 의지는 확고했다. 교육청은 공립인 단설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의 역할이 조금은 다르다며 이해를 바랬다. 그리고, 모든 교육과정이 그렇듯 공교육과 사교육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미 통폐합되었거나 될 병설유치원생들을 수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사립유치원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제시했다.

신원범 교육장은 단설유치원 신설 후 남은 부지를 지역의 유·초등생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함께 논의하자고 합의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육청을 나서는 유치원 등 대표자들의 뒤에서 “자기들에게 지원해 주는 돈이 얼만데….” 교육청 일부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들려 온다. 지역의 일선 교육자들이 그들을 관할하는 주무기관을 항의 방문한 것에 대한 불만인지, 얼토 당토 않은 주장을 한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앙금이 남는 소리로 들린다. 이날을 빌미로 은근한 앙갚음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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