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6>
오늘의 저편 <246>
  • 경남일보
  • 승인 2012.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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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마감하면서도 아버지가 남아 있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 어머니는 몸을 태워 이곳에 뿌려달라고 했다. 용진은 또 뼛가루를 한 움큼 움켜쥐었다. 가루는 거칠지 않은 바람 따라 허공으로 좀 날다가 짙푸른 나뭇잎들 위에 내려앉거나 숲 사이로 몸을 내려 땅에 닿기도 했다.

‘어머니이!’

기어이 용진은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자식을 버리고 남편을 택했다고 하며 아들에겐 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버지이!’

뒷산 등성을 내려다보며 용진은 처음으로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 모습을 그리워하며 막연한 외로움에 쌓인 적도 많았다. 굴이 있을 그곳으로 자꾸 눈이 당겨지고 있었다.

‘아이구 내 새끼, 씨 도둑질은 못한다고 하더니 어찌 이리도 훤한 제 아비를 빼다 박았니?’

용진은 어린 시절 잠귀에 걸리곤 했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 잠을 깨어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눈을 뜰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곤 하는 바람에 아는 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용진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남몰래 거울 앞에 선 적이 많았다. 아버지의 실상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던 탓이었을까.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유추해 내지 못했다.

이제 용진은 발아래의 산등성을 훑어 산자락에 안겨 있을 학동으로 눈을 내렸다. 울창한 숲에 가려 그의 시골집은 잘 보이지 않았다.

‘비어있는 줄로만 알았어.’

그는 목으로 짧게 진저리를 쳤다. 서울의 병원에서 화장터로 그리고 이곳으로 바로 올라와 버린 것이었다.

‘지금 아버지는 뒷방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을까.’

체머리를 흔들었다. 뒷산으로 달아나곤 했을 아버지의 모습이 카메라의 줌에 당겨져 오듯 단숨에 눈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눈을 다시 산등성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큰 산이 아닌데도 골이 깊어 보이는 건 등줄기 이쪽 아래로 어우러져 있는 울창한 숲이 잔인하도록 아픈 아버지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마음으로는 이미 아버지의 은신처였던 그 굴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굴 가까이까지 간 용진은 그냥 발길을 돌렸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할 수가 없어서였다고 한다면 핑계일까. 산을 내려가는 용진의 입에선 뜻을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자꾸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일단 서울로 올라온 용진은 형식의 집을 찾아갔다.

‘도대체 어떤 분일까?’

아버지의 생존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타인이었다. 물론 나환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비밀을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약을 대어준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의 마음을 독점해버렸던 어머니는 행복했을까. 어머니는 그를 찾아가 고맙다는 말을 꼭 해 달라고 일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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