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7>
오늘의 저편 <247>
  • 경남일보
  • 승인 2012.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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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그 사람 아들이라고?”

형식은 느닷없이 찾아온 중년남자가 민숙의 아들이라고 밝히는 바람에 어지간히 당황했다. 용진이가 아직 어렸을 때 그 얼굴을 몇 번 보았는데 그 모습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는 것 같았다.

“네. 진즉에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늦게라도 이렇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용진은 머리가 허연 노인의 안면에서 기나긴 세월 동안 고독을 앓아오고 있었음을 읽어냈다.

“감사하달 것이 무에 있겠나? 자네 모친이 내겐 친누이 이상이었는데 내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민숙의 안부를 묻는 형식의 목소리가 좀 떨리고 있었다. 용진의 가슴에 붙은 검은 상장이 알 수 없는 슬픔을 자극하고 있어서 그는 괴롭기까지 한 것이었다.

‘아닐 거야. 암 아니고말고.’

속으론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엊그저께 운명하셨습니다.”

상대의 눈이 상장에 와 꽂혀 있는 것을 알아차린 용진은 바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해 버렸다.

“아니? 어쩌다가 그래 갑자기 돌아가셨단 말인가?”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정자가 놀란 얼굴로 불쑥 끼어들었다.

형식은 그냥 멍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눈가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저희 집에 다니러 오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용진은 정자에게로 목을 돌려 설명했다.

“산다는 것이 참! 허무하군. 허무해.”

정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가까운 시일 내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허연 머리칼보다 더 하얗게 질린 형식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용진은 노부부 앞에서 물러났다.

머리에 은빛이 내린 그에게 아직도 어머니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을까.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던 형식의 모습이 새삼 용진의 눈앞에서 돋아나고 있었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 형식은 벽을 보고 누웠다. 그리곤 어깨를 사정없이 들먹이며 흑흑 느끼기 시작했다.

“흥, 그래요.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요. 오늘 하루는 아니, 딱 오늘 하루만 봐 주겠어요.”

머리에 휜 서리를 이고 있던 정자는 코웃음 치며 남편을 향하여 떠들었다. 그녀도 민숙의 갑작스런 죽음이 애석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남편이 애통해 하는 건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거리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귀를 막고 있을 순 없어서 밖으로 나와 버린 정자는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평생도록 옆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저렇듯 슬퍼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학동에 있었을 때 정자는 밤이 되면 몸과 마음이 뼛속까지 고독해서 젊음이 지치도록 벌판을 헤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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