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퍼스트레이디…'선거의 여왕'
22세 퍼스트레이디…'선거의 여왕'
  • 김응삼
  • 승인 2012.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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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그는 누구인가
박 당선인은 1952년 2월 2일 대구시 삼덕동 셋집에서 박정희와 부인 육영수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박 당선인은 장충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박 당선인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1년 아버지인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주도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박정희는 1963년 5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박 당선인과 동생 근령(박서영으로 개명)은 신당동 집에 따로 살았다.

성심여중 1학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기숙사가 폐쇄되면서 2학년부터는 청와대에서 전차로 통학했다. 그는 1학년 2학기부터 3학년 졸업할 때까지 반장을 맡았고 줄곧 반에서 1등을 했다. 성심여중에 이어 성심여고에 진학한 박 당선인은 줄곧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1970년 박 당선인은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4년 성적은 4점 만점에 3.82로 수석을 차지했다.

대학 졸업 후 박 당선인은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6개월만에 귀국했다. 22세의 박근혜는 어머니를 대신해 5년동안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을 맡아 공식 행사에 참석하고 외국사절을 영접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1시3분쯤 박 당선인은 전화 한통을 받는다. 김계원 비서실장은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 만찬석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9일간의 국상을 치룬 그는 1979년 11월 근령·지만 두 동생을 데리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박 당선인의 은둔과 인고의 세월이 시작된다. 박 당선인은 1981년 예장신학대학원을 다녔다. 마음을 잡기 위해 종교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러나한 학기만에 그만둔다. 그는 5공화국 시절 영남대재단 이사(1980~1988년)와 육영재단 이사장(1982~1990년)을 맡았지만 사실상 은둔의 시기를 보냈다. 당시 5공화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 격하(格下) 운동을 펼쳤고 그는 아버지와 가까웠던 인사들이 등을 돌리는 모습을 봐야 했다. 은둔의 시절을 보내던 박 당선인은 5공이 끝나자 19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발족했고 1989년엔 박정희 1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치르기도 했다.

40대로 접어들면서 박 당선인은 정치권으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지만 사양했다. 당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조용히 사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지원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1998년 4월 재보선 때 대구 달성에서 당선된 박 당선인은 15년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서며 최고의 ‘소방수’ 역할을 했다.

2004년 박 당선인은 한나라당 대표가 돼 총선을 지휘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50석도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대표가 되자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는 등 승부수를 던지며 121석을 얻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는 유세 도중 면도칼 테러를 당했다. 당시 의사는 “1cm만 깊었어도 목숨이 위험했다”고 했지만 병상에서 선거 상황을 보고받은 그의 첫 말은 “대전은요?”였다. 그는 2006년 6월까지 한나라당 대표로 있으면서 모든 선거에 승리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 기간 동안 당시 여당은 8명의 대표를 갈아치워야 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도전에서는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당시 박 당선인은 경선 결과에 승복하며 5년 후를 약속했다. 이후 2011년 12월 박 당선인은 다시 한번 소방수로 나섰다. 그해 10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14년 3개월동안 유지하던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지난 4월 총선에서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면서 다시 한번 선거의 여왕임을 입증했다. 지난 8월 주요 정당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된 박근혜는 2012년 12월 19일 대선에서 승리하며 헌정사사상 최초 대통령으로 ‘대한민국호’를 이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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