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8>
오늘의 저편 <248>
  • 경남일보
  • 승인 201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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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태양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별안간 정자는 앙상한 가슴을 한스럽게 툭툭 쳤다. 더워 죽을 판국에 가슴이 너무 시려 와서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용진은 마음으로 단단히 작정을 하고 시골집에 왔다.

대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용진은 담을 넘고 들어갔다. 이태 전부터 새 대문지기였던 백구가 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짖어댔다.

뒷방으로 곧장 간 그는 방문을 열기는 열었다. 아주 조금만 열어서인지 안의 사정을 단번에 알 수는 없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흘러나오는 방으로 성큼 다가가지는 못하고 오히려 한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때맞추어 진석은 뒷산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백구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불청객의 방문을 감지했던 것이다.

‘누가 찾아온 것일까? 아들네 다니러 간 아내는 왜 빨리 안 오는 것일까?’

진석의 마음을 복잡하기만 했다.

방안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점친 용진은 방문을 조금 더 열었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문을 닫아두고 몸을 돌리려다가 눈만 방안에 넣어 살펴보았다. 한쪽 모퉁이에 보통크기의 책상서랍만한 종이상자가 있었다.

용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상자뚜껑을 열었다. 크고 작은 사진들이 차곡차곡 담겨있었다.

‘아버지, 흑흑흑??.’

사진을 한 장씩 집어 들며 용진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의 백일사진을 본 것이었다. 첫돌사진도 있었고, 초등학교 입학기념 사진도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 찍은 사진은 물론 결혼사진도 있었다. 상자 속에 들어있는 거의 모든 사진의 피사체가 바로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으로 아들을 키워 온 것이었다.

이민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유민이의 모습도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다 있었다.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자식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세월들이.

방에서 나온 용진은 뒷산으로 눈길을 올렸다. 검푸른 숲이 눈물 속에 잠겨 일렁거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으며 담 밑으로 눈을 당겨갔다. 개구멍을 발견하고 만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순간 무릎이 푹 꺾이고 만 그는 어깨를 들먹이며 오열했다.

도대체 지은 죄가 없었던 아버지는 스스로 무기수가 되어 숨어 지내야 했다. 아니 스스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이 사회가 그에게 침을 뱉어댔으니 숨어살 수밖에 없었다. 나병에 걸렸다는 그 이유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재수가 더럽게 없어서 몹쓸 병에 걸렸을 뿐 나환자는 위험인물이 아닐 뿐더러 나병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도 아니었다. 병균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흉기로 작용될 수 있다면 감기환자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순서일 터였다. 한 번의 재채기나 기침을 통하여 분무된 수많은 바이러스가 즉석에서 타인의 기관지를 노리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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