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送年會)와 송구영신(送舊迎新)
송년회(送年會)와 송구영신(送舊迎新)
  • 경남일보
  • 승인 2012.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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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완 (합동참모본부 사후검토관)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동안 치열한 대통령 선거 열기 속에 파묻혀 임진년(壬辰年)이 파하고 계사년(癸巳年)이 다가오는 것을 잠시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엄격히 따지면 송년은 보내지 않아도 흘러가고 잊지 않으려 해도 잊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시간의 법칙이므로 굳이 망년회와 송년회가 어떻고를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1년간 세월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송년회 모임을 갖는다. 연말 모임을 망년회(忘年會)라 부르는데 ‘망년’은 망년지교(忘年之交) 또는 망년지우(忘年之友)에서 온 말로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친구로 사귄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섣달그믐께 친지끼리 모여 흥청대는 세시풍속으로 ‘망년회’를 ‘한 해를 잊는 모임’으로 써 오고 있다. 따라서 ‘망년회’는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우리식인 ‘송년회’로 고쳐 부르는 것이 좋다고 본다.

몇 년 전 리서치 전문기관 ‘리서치 랩’이 전국 성인 남녀 1141명을 대상으로 ‘송년회’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78.8%가 ‘송년회가 필요하다’고 했고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21.5%로 나타났다. 젊은층에서 송년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더 높았으며, ‘바람직한 송년회’ 형태로는 가족동반 모임(43.5%), 문화관람(21.8%), 음주가무(20.4%), 여행(14.4%)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설문조사와는 달리 송년회가 있는 12월에 연간 술 소비량의 1/3이상을 마신다고 하니 대한민국이 술독에 빠진 것 같다. 12월1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의 빚이 3600조원에 육박해 작년 국내 총생산(GDP)의 3배에 달했고, 가계부채가 약 1000조 원에 이르는데도 우리는 한 해 약 23조 원을 술로 마셔 버린다니 송년회의 위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필자는 며칠 전 올 들어 가장 추웠던 때 ‘백령도’를 다녀왔고, ‘암’과 생사의 갈림길에서 투병하고 있는 병실을 찾았으며, 이런저런 모임유형으로 송년회도 참가해 봤다. ‘백령도’엔 ‘천안함 폭침’ 이후 북한이 재도발 시 원점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합동전력이 대폭 보강돼 긴장 속에 사기가 충천해 있었고, 병실에는 자신의 건강회복을 위해 육체적·정신적 극심한 고통을 참으면서 생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렇게도 바라던 내일’이라는 생각이 엄습해 눈물마저 말라버리게 했다. 그리고 송년회는 역시 흥청망청 술이 술을 부름으로써 무언가 새로운 대책이 필요함을 느꼈다.

송년회를 술에 찌든 상태에서 무의미하게 한 해를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개인·가족·친지·사회 등에 이르기까지 ‘목표대비 1년간 살아온 자기성찰·반성·정산과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계의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각자 1년의 정산이 쌓이고 쌓인다면 훌륭한 자신과 가정, 살맛나는 멋진 사회와 찬란한 대한민국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에서 “나는 오랫동안 무덤 앞에 앉아서 울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그제야 정적이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을 구분하는 동그라미가 완전히 닫히는 걸 느꼈다. 내가 누구이고, 또 내가 누구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지성이나 의무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고 했다. 드디어 그는 자기 정체성과 성찰을 통해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아버지로부터의 위대한 꿈을 이뤄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로 1차 세계대전 이후 길을 잃은 젊은 세대에 대한 문학적 공감이자 응원을 보내 희망을 갖게 했다. ‘송년’은 한 해를 보낸다는 의미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송구영신(送舊迎新)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뽑아 올해는 어느 때보다 송구영신이 잘 어울릴 것 같다. ‘부강·행복·희망찬 대한민국을 위하여’ 새로운 5년, 혹은 그 이상의 우리 삶과 미래를 위해 자기성찰을 통한 ‘연말정산형 송년회’를 실천한다면 내년의 태양은 강렬하게 다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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