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49>
오늘의 저편 <249>
  • 경남일보
  • 승인 2012.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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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은 나균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없었다. 들은풍월이 그대로 읊자면 공기 중에 나오면 수초 만에 죽어버린다는 것. 보균자와 정답게 악수를 해도 손에 상처가 없는 이상 전염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

건강한 이들과 건강해 보이는 이들과 각종 질병에 걸린 이들이 21세기를 끌어가고 있지 않은가. 왜 나환자만 여전히 어제 보내어진 곳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자네부터 당장 아버지한테 달려가 봐.’

용진의 마음 한쪽 구석에서 불쑥 한마디 한 것이었다.

반박할 말이 없어진 그는 별안간 갈 곳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계속 용진이의 지켜보고 있던 백구는 알 수 없는 소리로 낑낑거리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왜 컹컹 짖지 않는 거야? 낯선 사람을 보면 목에 핏대를 올려야 할 네놈이 왜 날 핥아보기만 하니? 왜?’

용진은 녀석이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만 같아 기분이 한마디로 개떡 같았다.

이제 백구는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서 개구멍까지 갔다간 용진을 뒤돌아보고는 하고 있었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마음으론 뒷산으로 수십 번도 더 달려가고 있었다. 두 다리는 도무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형식은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가방 속엔 진석의 약 뭉치가 들어있었다. 오래 전에 사 둔 나병치료제였다. 불현듯 허공으로 얼굴을 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민숙의 모습이 돋아났다.

‘야속한 사람, 말도 없이 그렇게 가 버리는 법이 어디 있소?’

그의 동공 위로 눈물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정자도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남편은 가방까지 싸들고 집을 나가면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훌쩍 집을 나가버릴 때마다 밤을 새워 몸을 뒤척이며 가슴을 태우고는 했다.

이제 정자는 남편에 대하여 모기눈물만한 관심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입가엔 헛웃음이 자꾸만 맺히고 있었다. 두 번 다기 돌아오지 않을 젊음의 시간들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가까운 우체국으로 간 형식은 가방을 열었다. 진석의 집 주소가 적힌 그 약 뭉치를 꺼냈다. 수취인은 용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제 자네가 아버지의 여생을 보살펴드려야만 해. 그래야만 자네 모친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테니까.’

용진의 이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자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편의 마음이 아주 단단히 붙박여 버린 데가 어딘지. 그는 그렇게 평생 동안 한 여자만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까닭으로 평생 동안 남편에게 버림받고 살았다. 이제는 그녀가 그를 버리기로 작정했다. 저세상으로 가고 만 여자 때문에 또 버림받기는 죽기보다 싫어서 그를 깨끗이 버려주기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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