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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육수에 메밀묵 한 입' 든든한 나들이박희운의 맛이 있는 여행 <11>황매산 주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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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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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을 대표하는 산인 황매산은 높이 1108m로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합천군 가회면 대병면과 산청군 차황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송의산(539m) 효염봉(636m) 전암산(696m) 정수산(828m) 삼봉(843m) 월여산(863m)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새집골 옛절터 등의 명소도 있다. 황매산은 수중매라고도 하는데 이는 합천호 푸른 물에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잠기면 세 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붙여진 별칭이다. 화강암의 기암괴석과 소나무 철쭉 활엽수림이 어우러져 탈속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봄의 철쭉 가을의 억새 등 계절에 따라 변화무상한 아름다운 산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황매산 주변을 돌아보며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우리 선인들의 지혜로움과 슬기로움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절기에 맞추어 눈도 내리고 날씨도 많이 춥다. 이런 날 높은 산으로 눈 구경을 가자는 벗도 있지만 모두 뿌리치고 홀연히 집을 나서 조용히 산사 풍경을 즐겨보려고 평소 자주 찾았던 율곡사로 향한다. 율곡사는 산청군 신등면 율현리 정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천년고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신라 경순왕 4년(930년)에 감악조사가 중창하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사는 사적이 전해지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 돌계단이 성곽처럼 보이는 율곡사 입구 대웅전 기단 앞에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석조물이 남아 있다. 오랜 세월의 연륜을 전해주기라도 하는 듯 이끼와 퇴색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현재의 대웅전은 2003년 해체 과정에서 종도리(용마루의 밑에 서까래가 얹히게 된 도리) 하부에서 ‘강희십팔년기미월일상량기’의 묵서명 기록이 나와 조선 숙종4년(1679년)에 대대적으로 중수되었음이 확인 되었고, 율곡사라는 이름은 주변 골짜기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졌다는데 그래서인지 율곡사로 가는 길에는 유난히 밤나무가 많다. 율곡사 남쪽 4km 지점에 정취암도 자리하고 있는데 율곡사는 원효스님이 창건하였고,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정취암과 율곡사에 각기 주석하고 계시던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께서 수시로 왕래하며 수행력을 점검하고, 탁마수행(서로가 공부 한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배우고 경책하면서 수행을 향상하는 것)한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잔설이 많이 있으니 내려오는 길이 조심스러워 신경이 쓰이지만 쌀쌀한 눈바람에도 아늑한 산사의 분위기는 온 몸을 말끔하게 씻어주기라도 하는 듯 쇄락하다. 다음은 거창사건 추모공원으로 향한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니 눈이 제법 쌓여있고 빙판길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설경이 마치 아름다운 설국을 달리고 있는 듯하여 행복하고 오늘 여행의 백미인 것 같지만 잠시도 주의력을 놓을 수 없는 것은 현실이다. 차황면 소재지와 황산교삼거리를 지나니 더 썰렁하다. 그래도 차를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꾸불꾸불한 비탈길을 지나 고갯마루에 다다르니 설경은 절정에 이른다. 조심스럽게 사천천을 따라 추모공원에 이르니 공원전체가 잠에서 깨지 않은 듯하다.

거창사건 추모공원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거창양민학살사건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중 “말썽의 소지가 있는 곳은 초토화 시킨다”는 국군 11사단 9연대가 빨치산 토벌 작전 수행의 명목으로 공비와 내통했다는 구실을 붙여 국군에 의해 집단학살 된 동족상쟁인 6·25의 비극 속의 참극으로 얼룩진 애달픈 역사이다. 이에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의 제정에 의해 추진된 사업으로 1951년 2월 9일에서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에서 일부 국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희생당한 양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조성되었으며 총 부지면적 4만9133평 규모의 합동위령사업을 1998년에 착공하여 2004년에 준공하였다.

거창사건 추모공원에서는 일주문 위패봉안각 위령탑 부조벽 위령묘지 역사교육관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날의 희생현장을 떠올리며 둘러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을 것이다. 거창사건 추모공원 입구 영령을 모신 위폐봉안각을 지나면 우측에는 묘비가 줄 맞춰 서 있고, 그 아래 위령탑과 영령들을 위한 시비를 지나 더 들어가면 역사 교육관과 사무동이 자리하고 있다. 잘 정돈된 추모공원이 조성됐지만 구천을 떠돌 비명에 가신님들에게 이런 것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영령들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마음으로 빌고 빌어 이제라도 편안히 잠드시길 기원 드리는 일 밖에 없을 듯싶다. 거창사건의 전체내용을 이해하고 역사적 교훈을 둘러보고 싶다면 역사교육관을 방문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기 위하여 조그마한 고민을 한다. 산골마을이니 돼지고기가 유명한 것은 익혀 알고 몇 번 먹어본 적도 있어 편안하게 권할 수 있지만 오늘은 뭔가 색다른 것을 먹고 싶다. 지인에게서 들었던 식당 이름 인풍정이 아물거린다. 인풍정(引風亭)이라는 정자 앞에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추운 날씨라 거리에는 행인도 없으니 여쭤볼 수도 없어 어렵게 찾아갔던 곳이다. 하기야 정자 이름이라도 확실하게 알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된다. 식당이라기보다는 조그마한 동네 주막 같은 분위기이지만 곱창구이 두루치기 묵사발 어묵 등의 다양한 메뉴가 있다. 날씨는 구리지만 묵사발을 주문해놓고 따끈한 방에 자리를 한다.

인풍정은 조선 중종 때 통정대부 부사직을 역임한 신여수의 5대손 묵일헌 신치중이 1678년에 신원면 양지마을 동쪽에 축대를 쌓고 나무를 심어 풍류를 즐기기 좋은 곳을 만들어 인풍정이라 명명했던 것으로 1923년에 그 후손 신종학이 인풍정 건물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주민들은 현재 나무가 식재된 남쪽 상단을 인풍대, 정자가 있는 북쪽 하단을 인풍정이라 부르고 있는데 750㎡ 부지에 서로 10m 정도의 고저차를 두고 배치되어 있으며 모두 하천을 향하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정자의 내력에 대하여 알아보기도 하고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기다리니 묵사발이 나왔다. 멸치 다시마 무 버섯 등을 넣고 깔끔하게 잘 다려서 낸 따끈한 육수에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쑨 메밀묵을 가지런히 썰어 적당하게 야채와 파를 고명으로 그 위에 김과 깨소금을 넣어 내놓았다. 웰빙 건강식으로 먹을 만하다. 한 그릇이면 한 끼 요기로는 충분할 듯하였는데 방금 가마솥에서 끓이고 있는 두부가 생각나 두부도 한 접시 덤으로 청하여 먹으니 배가 불러 금방 졸음이 밀려온다. 하지만 오후 일정이 빡빡하여 길을 나서려니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넉넉한 시골 인정을 느낄 수 있어 더 행복하다.

이제 합천호로 간다. 봄이면 벚꽃길이 너무나 아름다워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지만 오늘은 썰렁한 눈보라만 몰아치는 적막만 흐른다. 보통 때에는 흉하게 붉게 맨살을 들어내어 호수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기는 어려웠는데 오늘 보는 만수위의 합천호는 잔잔한 바다처럼 포근하게 나를 반긴다. 가을이 저물어갈 즈음에 합천호 풍경 1번지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비로소 합천호의 풍경은 환상 그 이상의 풍경을 자아낼 것이다.

만수위 합천호의 아름다움에 그냥 지나쳐버린 고가식당, 예전에 먹어본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할머니의 음식솜씨가 너무 좋아 잘 아는 교수의 권유로 식당을 낸 것이 1990년이란다. 집안 어른들을 대접하던 소박한 음식으로 길손은 맞는데 멸치 버섯 등으로 우려낸 육수에 곱게 채 썰어 말아내는 메밀묵채를 안주 삼아 7대째 전해오는 집안 술인 고가송주를 한잔 마셔보면 그 맛에 반할 것이다. 술맛을 잘 모르지만 은은한 솔향에 적당히 달고 신맛이 혀끝에 착착 감겨 마셔본 사람이라면 그 맛에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문화재로 지정된 은진 송씨 고가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합천호의 이모저모를 둘러보고 이제 회양관광단지로 들어선다. 아직 속이 든든하여 당장 뭘 먹기는 어렵겠기에 우선 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을 찾아가 주차를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회양단지를 돌아보니 조그마한 시골 동네이지만 먹거리는 다양하다. 황태구이와 황태탕을 주문해놓고 내다보는 창밖의 합천호는 잔잔한 바다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황태산지도 아닌 이런 산골에서 갖은 양념으로 맛있게 구워낸 황태구이를 비롯한 황태요리가 좀 생소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푸짐하게 리필을 해주는 산채와 함께 반주라도 한잔하면서 매콤한 황태구이와 황태탕을 맛보면 누구나 넉넉한 합천의 인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황매산으로 올라 억새라도 보고 오면 좋으련만 길이 빙판이니 어쩔 수 없다. 소개할 것 많은 황매산 주변의 못 다한 얘기들은 또 다음을 기약하련다. /충무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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