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리더십이 힘이다
부드러운 리더십이 힘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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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다시 5년을 시작할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다. 솔직히 말해서 매 임기 때마다 이 분이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분일까 기대 반 걱정 반 하던 우리 세대 공통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런 기억을 다시 상기한다. 이 분이 국가와 국민의 역사에 기억될 분일까.

춘추전국시대 주나라의 노자는 스승인 상용(商容)이 돌아가시기 전, 그를 찾아가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상용은 당신의 입을 딱 벌리면서 말했다. 내 입안에 “혀가 있느냐?”, “예, 있습니다.”,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느냐?”, “예.” 영리한 노자는 단숨에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고 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살아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강한 것은 당장 남을 부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먼저 깨지고 만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함이 지나쳐 스스로 자멸했던 정권의 면모를 보여 왔다. 유신독재를 한 대통령은 부하의 흉탄에 최후를 맞이했고, 국민을 향해 총질을 했던 정권은 대통령이 감옥과 귀양살이를 되풀이했다. 추세는 살펴보지 않은 채 아집과 오만이 지나치게 강했던 한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IMF속으로 몰아넣었고, 또 한 사람은 청렴과 도덕성의 족쇄에 걸려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통섭의 대가 에드워드 윌슨은 역사적 현실을 어떤 질서의 흐름으로 이해하고자 하는데 역사적 질서는 언제나 승리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강하기 때문이다. 이에 강하게 대처하면 자멸하는 법이다. 강한 역사의 흐름에 부드럽게 대처해야 정권도, 역사도 오래간다. 어떤 충격도 부드러움의 완충 앞에서 녹아 융합된다. 요즘 뜨거운 감자라 할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도 결국 성장의 틀 속에서 세제개혁과 고용창출, 분배가 가능하도록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치는 딱딱한 ‘이빨’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다. 부드러운 ‘혀’와 같다. 그것은 힘과 유형이 아니라 무형의 부드러움 속에서 이루어지는 도(道)의 한 자락과 같은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이 보여주듯이, 지난 우리정치는 민주화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이고 마키아벨리적으로 이끌어져 왔다. 다시 말하면 ‘정치’가 아닌 ‘통치’를 해왔던 것이다. 정략가들의 단원적 투기의 장이었지 정치가들의 다원적 경쟁의 장이 되지 못한 안타까운 정치사였다.

서울대학교 임현진 교수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대통령의 덕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혼(魂)과 애(愛)다. 한국인으로서의 얼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민족사의 영광과 애환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역사의식과 미래를 만들어주는 상상력의 밑거름이다. 둘째, 지(智)와 덕(德)이다. 세상사에 대한 지식과 경륜이 많다고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슬기롭고 올바르게 쓸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 나아가 대도를 따르되 이해와 관용을 바탕으로 남을 아우르고 포용할 수 있는 품성을 가져야 한다. 셋째, 공(公)과 합(合)이다. 공동체의 유대와 결속을 위해서는 전체를 위하는 정신과 통합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공이 사를 앞서야 법치의 근본이 세워지고 신뢰의 기틀이 바로잡힌다. 전체에서 부분을 생각할 때 또한 공생이 순리 아래 반목과 대립이 화해와 융합으로 바뀔 수 있다.

혼과 애, 지와 덕, 공과 합이란 결국 수백의 교향악단원을 이끌고 지휘하는 지휘자의 성격과 비슷하다. 지휘자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귀 기울여 전체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아우름과 섬세함으로 무장한다. 한국을 앞으로 5년간 이끌어 갈 대통령은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치, 경제와 동북아 속에서 한반도의 위상을 꿰뚫어보면서 안으로는 양극화 해소와 다양한 사회통합, 바깥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이란 툭 터진 생각과 변화를 읽어내는 유연한 안목을 지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충돌하기 마련이다. 유연한 안목은 부드러운 리더십에서 나온다. ‘혀’가 ‘이’를 이기는 원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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