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고민하지 않고 있다
진보는 고민하지 않고 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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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인간 사회생활과 관련한 변화에 대한 인식의 큰 축은 현실의 여러 조건이 자신의 삶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에 이 현실은 유지되어야 하고, 변화를 주저하는 세력과 이 현실이 자신의 삶 혹은 사회적 삶과 비춰보건대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바뀌어져야 한다는 입장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전자를 보수, 후자를 진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두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인 것을 포괄하고 있다. 사회에 내재된 인간 삶의 양태인 이기(利己)와 이타(利他)에서 수많은 변수가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역동성이 내재될 수밖에 없는 후자의 사회적 삶에는 자신의 현재 삶 모습이나 혹은 시대정신과의 관계에서 현실을 어떻게든 규정해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등한 흐름에서 지금의 세계적인 추세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진보의 시대로 이행되고 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자본가도 자본주의 위기를 얘기하고 복지와 노동을 입에 올리고 있다. 진보의 몫을 긍정하는 것이다.

현실은 진보의 시대로 나가고 있어

우리는 북한 변수 그리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경제발전의 속도가 사회·문화발전의 속도보다 월등히 앞서 나가다 보니 보수·진보에 대한 국민의 의식구조의 이해력은 더딘 편이고, 진보 당사자의 행태 또한 이를 거들고 있다. 최근 18대 대선 TV토론은 그 단적인 예다. “박정희의 딸만은 대통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거나 “오직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토론의 자리에 나왔다”’는 이정희 후보의 말은 2002년 무상 의료, 부유세 등을 내세우며 토론을 벌였던 것과는 격세지감이다. 진보는 그 사회적 접촉 파장이 적지 않았던 이번 대선토론에서 이처럼 자충수로 그들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보수를 결집시키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국민들로부터 조롱과 기피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진보의 한 인격이다.

진보는 근대 합리주의에 기반을 두고 진행된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인류의 미래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후 개인 혹은 사회적 삶의 모순 극복이라는 지향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진보는 역사적으로 처한 상황처럼 굴곡 많고 복잡한 사연을 안게 된다. 왜냐하면 진보는 어느 사회나 대체로 기득권 구조에 반항하거나 혹은 변화를 주는 주장으로 인해 오랜 시간 금기어였고, 지금도 불온이라는 편견의 대상으로 때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체제 혹은 하나의 제도, 포괄하여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그 구성요소의 복합성과 다변성으로 인해 그것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모순과 내적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이러한 것에 지양(止揚)하려는 대립각을 세운 것이 진보다. 문제는 진보의 그러한 주장이 하나의 세력화되려면 그 사회가 처한 현실에서 수용의 정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복지국가는 지속적인 성장과 고용이 기능할 때 가능하고, 더 나아가 정부나 관련 기구들이 복지를 시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비용을 투여해야 하는 관리 사회형 복지일 때 가능하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진보가 복지를 남발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나 주장의 전제내용에 정통하여 토착화의 한 계기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진보는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는 당 정체성이나 비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토론과정에서의 거친 말투나 오만에 가까운 말투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로부터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정치라는 것이 사람의 일이기에 인간적인 성숙미도 보여야 하고 또 살아온 역사적 현실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한국적 현실에서 진보는 더 조심스러워해야 할 정서나 분단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있다. 진보는 이렇게 토착화와 관련하여 가장 기본적인 상황대처에 미흡해 스스로 설 땅을 좁히고 있다.

진보, 고뇌가 읽혀져야 한다

‘서유견문’은 유길준이 1885년 유럽 여러 나라를 시찰하고 돌아온 뒤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어 그 기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895년에 탈고한 최초의 근대적 해외 견문록이다. ‘서유견문’에서 유길준은 서양의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우리 토양에 맞게 계승 발전시키면서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진보가 보다 합리적으로 기존의 가치체계와 제도를 비판하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인 정치적 및 사회적 가치와 제도들을 모색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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