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다>박중춘·이성자 부부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다>박중춘·이성자 부부
  • 임명진
  • 승인 201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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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수술 이겨낸 우린 삶의 동반자”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쥐고 있다 한들 제 몸 하나 병들어 아프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제일 소중한 것은 부귀영화도, 명예도 아닌 건강을 첫 손에 꼽는다.

여기 진주시에 사는 박중춘(70)·이성자(67) 부부는 요즘 활력 넘치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생각은 이들 부부의 가장 큰 재산, 불과 2년 전만 해도 폐암 선고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삶의 기로에 섰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3번에 걸친 수술 끝에 이제는 건강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건강 부부로 화려한 변신을 한 이들 부부를 만났다. /편집자 주

◇폐암 선고, 2년간 3번에 걸친 수술

이들 부부는 얼마전 ‘삶의 여유, 두번째’ 라는 작은 부부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첫 번째 전시회인 ‘삶의 여유’가 2009년 2월 남편 박중춘씨의 대학 정년퇴임에 맞춰 열렸으니 근 4년 만이다. 박중춘(이하 박 교수)씨는 농학박사로 경상대학교에서 42년 동안 근무했다. 국내 시설원예 분야 전문가로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정년퇴직을 할 때만 해도 이제는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채 1년도 안돼 이들 부부에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 있다고 여긴 박 교수에게 폐암선고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진 것이다.

벌써 12년 전에 끊었던 담배였는데, 날벼락 같은 선고에 박 교수는 어이가 없어 그저 멍하니 의사의 이야기만 듣었다고 했다. 평생을 묵묵히 남편 곁을 지켜온 아내 이성자씨가 받은 충격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2년간 이들 부부는 암과의 소리 없는 사투를 벌였다.

◇남편 박중춘씨의 스토리

남편 박 교수는 2010년 초 국립암센터에서 폐암 수술을 받았다. 조금만 더 진행됐더라면 수술마저도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뒤 암세포는 뇌로 전이됐다.

“어느 순간에 서는 데 방향이 바로 간다고 했는데 삐딱하게 가고, 그래서 의사한테 갔더니 한쪽 다리 들고 서 있어보라고 하는데, 못 서겠더라고. 검사하니 뇌에 전이가 됐다는 거야.”

폐암 수술에 이은 뇌암 수술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암세포의 흔적이 남아 3개월 뒤에는 경상대병원에서 사이버나이프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 받으니, 처음에는 황당했고, 그 다음에는 남은 삶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지. 그때 나보다 더 심각했던 사람이 바로 아내였어”

한적한 시골로 들어갈 생각까지 했다. 박 교수는 “살아오면서 나는 내 자신에 충실도가 훨씬 높았고 가정이나 아내에게는 해야 할 일은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그 틈을 아내가 잘 메워준 거지. 그래서 인생의 후반부에는 좀 자유스러운 인생을 살게 해 주고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짐을 지게 한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5년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3년 정도 남았다. 그러나 지금 박 교수는 치료에 대한 부담 보다는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감 속에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함께 건강을 위한 운동을 즐긴다. 틈틈히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부부가 펴낸 사진전을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책의 제목은 ‘삶의 여유’라고 정했다.

“정년 후 여유로움에 대한 우리 부부의 계획과 늙음이 가져다 줄 느림의 자유로운 특권이 예상치 못한 수술로 남의 이야기가 되 버렸다”는 박 교수. 하지만 “고난을 이겨내고 이제는 오히려 삶의 여유로움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했다.

◇아내 이성자씨의 스토리

초등교사 출신인 이성자씨는 행복한 결혼생활도 잠시, 출산 뒤에 찾아온 극심한 산후 통에 시달렸다. 아파트 계단을 못 내려올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우울증까지 오지 않을까 걱정돼 뭔가를 해 봐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서예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한쪽 팔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는 서예마저도 이씨는 힘이 들었다. 두 번이나 쓰러졌다.

다시 한국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체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그마저도 부담이 됐다.

이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건강해 지려고 시작했는데, 하는 순간은 심취가 돼서 마음은 좋은데, 작품을 끝내고 나면 몸은 더 아팠어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쉬고, 좀 괜찮다 싶으면 또 하고…”

그런 이씨에게 남편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씨는 개천예술제와 도미술대전에 입상하는 등 범상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다. 그런 생활이 33년 동안 반복됐다.

그리고 뜻밖에 찾아온 남편의 폐암 선고. 하늘이 노랬지만 이씨는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씨는 가장 먼저 이들 부부의 가장 큰 자랑인 수 십 년간 고이 간직해온 800여 장의 희귀한 LP판과 셀 수 없는 도서, 그리고 수많은 작품들을 전부 정리했다.

벽마다 빽빽히 들어찬 도서와 LP판, 작품들이 남편의 회복에 왠지 모를 중압감을 준다고 느꼈다. 건강에 좋다는 식단을 꾸리고 남편을 챙겼다. 남편에게 쾌적한 시골로 들어가는 제안도 했다.

남편이 생사의 기로에 서는 순간을 경험하자 이씨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고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마음 뿐이다. 이씨는 “남편이 이대로만 건강했으면 하는 기도를 매일 한다. 지금처럼 행복하게 앞으로도 그렇게 함께 살고 싶은 게 바로 새해 소망”이라고 말한다.

◇우린 삶의 동반자

박 교수에게 아내는 삶의 동반자, 파트너다. 아내 이성자씨도 마찬가지다. 부부는 비슷한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사진과 전각을, 이씨는 문인화와 서예를 한다.

수술 이후 박 교수는 대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음악을 다시 즐겨 듣고 있고, 주말이면 사진을 찍으러 산천을 돌아다닌다. 좋아하는 등산을 하지 못하는 게 약간 아쉽지만 틈틈이 아내와 같이 서예도 배우고 전각도 한다.

사진을 찍을 때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자연의 아름다운 장면을 찍으니 절로 몸도 마음도 튼튼해 지는 기분이다. 아내 이씨도 마찬가지다. 이 씨는 “지금 우리 부부가 하고 있는 일들은 단순한 취미의 이어짐이 아닌 건강을 이대로라도 유지할 수 있는 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사심, 필요없는 것의 버림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더 전보다 깊이 생각하면서 잘 보내려고 노력하려고 하는 것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취미를 공유하다 보니 부부에게는 철칙이 하나 생겼다. ‘조언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자’ . 박 교수는 “그게 바로 같은 취미를 수 십 년 간 부부가 이어온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인터뷰 도중에 이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주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 이겨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 부부의 ‘삶의 여유, 세 번째’ 부부작품 전시회가 기다려진다.

글=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사진=오태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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