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마음의 양식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마음의 양식
  • 경남일보
  • 승인 2013.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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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진 (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도서관’이라고 찍혀 있다거나 교과서, 문제집처럼 내 이름과 학번이 적혀 있지 않은, 가장자리가 깨끗한 책은 오랜만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처럼 반납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과서나 문제집처럼 머리를 싸매고 앉아 반은 억지로 들여다봐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 편히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선물 받은 책은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라 읽을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책을 선물 받은 지 꽤 됐는데도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책을 들여다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 엉덩이가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다가도 문득 이럴 게 아니라 토익 단어를 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학과 과제나 공부를 먼저 하고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 서둘러 책장을 덮곤 했다.

그러고 보니 마음 놓고 책에 푹 빠져 본지가 언제였나 싶다. 책꽂이에는 교과서와 문제집, 단어집이나 자격증 책만 들어차 있다. 최근 몇 년간 산 책 대부분도 교과서나 문제집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도 대부분 전공 관련 도서로, 과제나 시험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그마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도 필요한 부분만을 추려서 읽는 일이 다반사였다. 읽을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더라도 공부나 과제에 부담 주지 않을 정도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 읽곤 했다. 4학년 1학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그나마도 횟수가 줄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경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스펙쌓기·아르바이트…대학생들, 독서는 남 얘기’라는 제목의 기사에 등장하는 대학생들 역시 나와 같은 상황이었고,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도 어느 정도는 이에 공감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대학생을 포함한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은 2007년 12권에서 점점 하락해 지난 2011년 9.9권으로, 1달에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치인 만큼 독서량에 개인차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어쩌다가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독서 빈곤의 사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 ‘책 읽는 것은 마음의 양식을 쌓는 일이다’라고들 한다. 그만큼 책에는 지식과 경험, 지혜가 집약되어 있다. 이를 두고 ‘시골의사’로 알려진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은 “독자는 책을 읽으며, 일가를 이룬 한 인간의 지식들을 몇 시간 안에 훔쳐볼 수 있는 것이죠. 세상에 이만큼 훌륭한 도둑질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데카르트 역시 독서를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동안 마음을 채우는 일에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아쉽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댄 것 같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책 읽는 것도 수업이나 과제, 토익 공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또는 이들보다 더 중요한 일인데 눈앞의 일이 급해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새 2013년이다. 올해는 무슨 책이든 좋으니 한 자 한 자 가슴 깊이 새겨 가며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신소진·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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