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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인듯 고요한 기개 겨울 정자(37) 거창 용암정을 찾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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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1.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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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계 정온생가(윤위식)
동계 정온 선생 생가.
 
겨울의 진객은 뭐니 뭐니 해도 산야를 새하얗게 뒤덮는 눈이다. 매서운 추위로 황량한 겨울의 삭막함에 부드러움이 있어 포근함을 주고, 순백의 비경을 펼쳐내는 신비로움에 다정다감의 여유를 안겨주는 정겨움이 있어 이따금씩 기다려진다. 설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풍광치고는 계곡을 끼고 앉은 정자가 좋고 등이 굽고 휘어진 소나무가 좋고 옹기종기한 산촌마을이 좋다.

그래서 눈 덮인 산촌마을이 있고 정자가 있는 곳으로 길을 떠날 작정으로 눈길에 걸맞게 등산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눈길이 틔었는지 몇 군데에 전화를 하니까 거창의 위천면사무소에서 차량통행은 가능하다하여 수승대를 지나 위천변 외진 곳에 홀로선 용암정을 찾을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진주에서 용암정을 가려면 함양의 안의를 지나야 하니까 35번 고속도로의 지곡IC에서 차를 내려도 되지만 3번 국도를 이용하면 남강과 경호강변을 끼고 굽이굽이 새로운 풍광이 사시사철 길손을 반긴다. 백마산 돌아가면 웅석봉이 반기고 둔철산 옆을 돌면 필봉산이 손짓하고 강변 따라 산길 따라 모롱이를 돌고 돌면 눈 덮인 지리산의 천왕봉이 굽어본다.

수동삼거리를 지나면 이내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의 나란한 홍살문이 지나는 길손들을 경건하게하고 잊혀져가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하여 팍팍한 삶의 고달픔을 견뎌내는데 커다란 교훈을 일러주고 있다. 기와지붕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더욱 드높게 보이는 서원을 향해 고개만 숙여 경배를 가름하고, 일두 정여창 선생과 함께 배향한 동계 정온 선생의 생가가 용암정 가는 길에 있으니까 이참에 들려서 광해군에 맞서셨던 동계 정온 선생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길은 정도가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여쭤볼 요량으로 길을 재촉했더니 어느새 안의를 지나 마리면 삼거리에 닿았다.

마리면 삼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곧장 거창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좌회전을 하면 위천면을 지나 수승대와 용암정을 거쳐 북상면을 통과하여 무주로 가는 길이라서 좌회전을 했다. 사방천지가 하얗게 눈으로 덮여서 별천지에 들러선 기분이었다. 하얀 들녘의 끝머리마다 여기저기 올망졸망한 마을인데도 지붕마다 온통 눈으로 덮여있어 파란하늘과 하얀 땅으로만 구분될 뿐이고, 도로마저 온통 눈으로 덮여서 불과 4~5분이면 도착할 장풍삼거리까지 거북이걸음을 하다 보니 한참이나 걸렸다. 다시 위천면사무소까지도 엉금엉금 기다시피해서 가까스로 위천초등학교를 막 지나니까 경사진 언덕배기위로 들판에서 바람에 날려 오는 눈보라가 앞을 가리며 차창을 뒤덮었다. 짤막한 비탈을 간신히 오르자 설국의 전경이 또다시 펼쳐졌다. 빤히 건너다보이는 대궐 같은 기와지붕들이 하얗게 서로의 추녀 끝을 맞대고 그린 듯이 고요한데 좌우로 문간방을 날개처럼 달고 솟을대문 두 채가 나란하게 치솟았다. 왼편이 동계 정온 선생의 생가이고 담장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른편이 청렴한 목민관이셨던 야옹 정기필 선생이 기거하던 반구헌이다.
 
3.용암정(윤위식)
용암정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조선조 제16대왕인 인조가 정온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내린 “문강공동계정온지문”이라는 정려문인 홍패가 높게 붙은 솟을대문을 들어서자 계자난간에 누마루가 달린 정갈한 고택이 근엄한 기품을 물씬 풍기며 웅장하게 솟았다. 누마루의 지붕에다 활주를 받친 또 하나의 지붕을 겹으로 만든 특이한 고택이다. 누마루로 몰아치는 비바람을 가리기 위해 지붕 아래에다 지붕하나를 더 만들어 활주를 받쳐 추녀를 길게 뻗힌 눈썹지붕이란다. 사랑채 옆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단정하고 간결한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대청마루위의 처마 밑으로 촘촘히 메주를 새끼줄로 엮어서 줄지어 달았는데, 높낮이 하나 어긋남이 없이 가지런하고 크기 또한 틀에 찍은 듯이 하나같이 반듯하여, 안주인의 솜씨가 성품까지를 설명하고 남는다.

사랑채의 마루청에 걸터앉아 금원산을 바라며 명나라와의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며 화친을 반대했으나 청나라에 굴복한 수치를 참을 수 없다며 칼로써 자결을 자행하셨으나 실패하자 이곳 향리의 인근 덕유산으로 숨어버리셨던 선생의 충절에 가슴이 찡해졌다.

영창대군을 사사한 광해군에게 격렬한 상소로 맞서실 때의 선생의 결의는 어떠하였으랴. 목숨도 버려야하고 가솔들의 운명도 짐작하셨을 것을 어쩌실 요량으로 극언을 하셨을까? 목숨을 건 충절들의 구명상소로 인조반정까지 십년세월을 제주도의 유배로 목숨만을 건지신 선생께서 오늘의 정치사를 보신다면 뭐라 하실까가 짐작되고 남음이 있어, 죄스럽고 송구하여 선생의 흔적이라도 뵐까하고 천정을 살폈더니, 문루에 높이 걸린 충신당이라는 현판이 또렷하고, 1909년 의친왕 이강 공이 이곳 사랑채에 머물면서 친필로 남긴 ‘모와(某窩)’라는 빛바랜 현판이 세월의 무상함을 또 한 번 일러준다. 안채 뒤로 마련된 선생의 사당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반구헌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 개의 방과 곳간하나를 양편으로 나눈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골기와 팔작지붕의 5칸 사랑채가 작은 크기가 아닌데도 그 어떤 꾸밈새도 없이 날렵하고 정갈하여 단아한 맛을 물씬 풍긴다. 영양현감을 지낸 야옹 정기필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왔으니 재산도 없고 기거할 거처마저 없어, 이를 안타까워했던 안의현감의 도움으로 마련한 처소였다니, 얼마나 청렴한 목민관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어, 이름있는 실세들이 줄지어서 법정으로 들어서는 오늘의 정치사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랑채 뒤로의 안채는 없어졌고 우물의 물의 아직도 말갛게 내려다보이는데 두레박이라도 있었으면 한 모금 마시며 선생의 체취라도 맡아보고 싶어졌다.

발길을 돌려서 말목재를 향해 천천히 차를 몰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말목재를 넘기만 하면 절집도 불당도 없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외진 곳에 보물 제1436호인 농산리 석불입상이 있기에 찾아 뵐 요량으로 차를 몰았으나, 경사도라고 할 것 없는 길인데도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두세 번 찾아 봤기에 후일을 기약하고 가까스로 차를 돌려 용암정을 찾아서 발길을 돌렸다.

수승대 관광지를 지나 위천계곡을 따라 북상면 쪽으로 1km남짓 가다보면 산모롱의 야트막한 둔덕에 “갈천동문”이라고 음각한 주홍글씨의 커다란 빗돌이 비경과 절승지의 입문임을 일러주고 섰는데, 북상면 13경의 제1경인 용암정이 덕유산계곡물인 위천천 건너편 강둑에서 설원속의 그림처럼 고즈넉하게 홀로 앉아 고요함에 젖어 있다.

봄의 정자는 마음을 다스리는 곳이고 여름의 정자는 몸을 다스리는 곳이며 가을의 정자는 마음을 비우는 곳으로 이 모두는 안에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정자이지만 겨울의 정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정자이다. 건너다보이는 용암정의 날렵한 추녀는 하얀 눈을 한가득 덮었으나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뻗어있어, 도포자락 펄럭이며 학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춘 듯이, 그 어느 것 하나 동적인 움직임도 없이 정지된 설원속의 비경이 길손의 넋을 빼앗는다. 설원속의 밤풍경은 후일로 미뤘는데 빠져드는 풍경화 속을 무슨 수로 벗어나나.

덕유산 씻긴 물이 송계사를 안고 돌아

월성계곡 희롱하던 청정옥수 얼싸안고

위천천서 어우러져 용암정에 노닐면서

거암반석 깔아 놓고 청풍명월 품었구나.

용암정의 반석도 청정옥수도 모두 설원으로 덮었는데 얼음장 밑에서는 하얀 공기방울을 동동 띄우며 흐르는 작은 도란거림은 권력과 세도에 물들지 않으려고 출사를 포기하고 오르지 학문정진과 후학들에 예도만을 가르치셨던 용암 임석형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교훈이 되어 설원의 깊숙한 곳으로 여울지며 흘러간다. /지역문제연구소장

2.정온선생 생가와 반구헌(윤위식)
동계 정온 선생 생가(왼쪽)와 야옹 정기필 선생이 기거했던 반구헌(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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