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대하며
인문학의 새로운 전성기를 기대하며
  • 경남일보
  • 승인 201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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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기 (국립경상대학교 총장)
문학·역사·철학을 흔히 ‘문사철(文史哲)’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하면 인문(人文)이다. 대학의 인문대학에서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가르친다고 보면 된다. 인문은 동물일 뿐인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학문이다. 그런 만큼 그 중요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돌았다. 과학과 기술 만능의 시대에 인문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학문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인문대학 신입생이 줄고 졸업생의 취업도 힘들었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움직임이 대학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인문의 힘이야말로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자각하자는 운동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문화 예술의 근본이고 창조 과학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확산시키는 자발적 운동이 꽃을 피운 것이다. 인문주간을 제정해 각종 학술행사와 강좌를 마련했고, 나라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몇 해 사이에 인문학은 소생의 단계를 넘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듯하다.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근거는 가까이에 있다. 경상대학교 인문대학과 인문학연구소의 경우를 살펴본다. 인문대학과 인문학연구소는 오래 전부터 일반시민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열어 오고 있다. ‘인문학의 저변 확대와 시민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시키자’는 취지에 전체 교수들이 공감했으며 경남지역 학생·주민들이 동참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경상대 인문대학 교수들이 학교 바깥으로 출강한 인문학 강좌는 150여 회, 수강 인원은 1만 명을 넘는다. 교수 개인적으로 마련한 인문강좌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산청 선비대학, 통영시민강좌, 진주시민과 함께하는 고전 아카데미, 독일 문학의 이해, 명시 명문 감상, 한문을 통해 배우는 바람직한 지도자상, 남명사상의 이해, 조선시대의 선비정신, 군 장병의 인문학적 사고를 위한 인문강좌, 한국항공우주산업 인문학 강좌, 갤러리아 백화점 문화센터 시민인문강좌, 하동화력 인문학 강좌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적게는 30~40명에서 많게는 1600여 명이 수강한 강좌도 있다. 우리 지역 인문학 붐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공군교육사령부 인문학 강좌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12회에 걸쳐, 삶의 가치와 행복의 윤리, 문화 간 소통과 글로벌 에티켓, 행복의 심리학, 전쟁의 기억과 시인의 삶, 현대인의 비극, 세계 유산과 산의 인문학 등의 강좌가 진행됐다. 공군교육사령부 장교와 사병들에게 인문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고 일상생활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큰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갤러리아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올 2월까지는 ‘세계 문학 기행’이라는 주제로 강의가 이루어졌고, 올해 3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세계 도시 인문학 기행’으로 모두 40회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주의 한 백화점 강의실에 앉아서 세계 도시 여행을 하는 흥미로운 강좌가 경상대 교수들에 의해 열리는 것이다.

하동화력 인문학 강좌의 경우, 하동화력 임직원을 대상으로 2개월에 한번씩 6회를 실시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21세기 한국, 문화 간 소통과 글로벌 에티켓, 논어를 통해 본 리더십, 주류 영화 읽기, 성과 젠더의 경계 허물기, 2000년대 한국소설의 새로운 상상력과 같은 인문 강좌에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흥미진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렇게 강좌를 활발하게 진행해온 결과 경상대 인문대학과 인문학연구소는 지난해 8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시민인문강좌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찾아가는 인문학:인간다움과 사람됨’, ‘지속가능한 인문도시 통영:300년 통제영의 힘을 깨우다’라는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인문한국(HK)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경남문화연구원의 지리산권문화연구단도 ‘지리산 인문학 시민강좌’를 열고 있는데, 지난해 하반기에 4기 과정을 마쳤다. 지리산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위한 노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더욱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은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이 처음 시도하는 셈이다.

이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문학’과 ‘힐링’(치유)을 연결지어 새로운 인문강좌의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인문학, 그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교수님들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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