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을 위해 익숙함을 버리자
새로운 삶을 위해 익숙함을 버리자
  • 경남일보
  • 승인 2013.01.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몇 달 전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몇 년씩 같은 번호를 쓰다 번호를 바꾸었더니 사람들이 무슨 큰일이 난 줄 안다. 거기다 새로운 전화번호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도 하지 않았더니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까지 더해져 한바탕 난리 아닌 난리가 났었다. 내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번호 하나 바뀐 게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지 민망하기까지 했다.

사실 사람들의 인적사항은 인터넷상에 쉽게 노출되어 있어 컴퓨터를 조금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시간 안에 찾아 낼 수 있는 게 다반사인데. 중요한 것은 직접 내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서운한 듯했다.

IT강국이라고 하지만 IT강국다운 컴퓨터나 스마트폰 예절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받고 싶지 않은 전화가 있고, 또 내가 원하지 않은 글이 날라올 때 일일이 답을 해줘야 하는 것인지, 그냥 무시해도 괜찮은지 사회생활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판단이 안 설 때가 있다.

원래 게으르고 소심한데다 변화를 유독 싫어해 한번 정해지면 그대로 해야 하는 자폐성향이 강한 내가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집을 바꾸고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 일들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좋다고도 하고 너무 변하지는 말라고도 한다.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아 나 자신 또한 재미있기도 하고 나 같지 않아 이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속의 숨겨진 나를 발견하는 새로움이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변화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마법을 가졌다.

몇 달 사이에 나의 환경이 바뀌면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말 해야 되는 게 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2~3년 아니 1년 이상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연락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매일 통화하는 사람은 열 손가락도 되지 않았고 매번 핸드폰에 저장하는 습관으로 지워도 될 연락처가 내 핸드폰 가득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중요한 연락처조차 손가락으로 눌러 버리는 저장습관으로 전처럼 외우지도 못한 채 단축번호나 이름으로만 기억하고 있어 메모해 두지 않으면 핸드폰을 잃어 버렸을 땐 멘붕에 빠지게 될 판이었다. 그래서 이번 참에 지울 것은 지우고 중요한 연락처는 수첩에 옮겨 적었다.

집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바꾸면서 한 달 내내 내가 한 행동은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었다. 일단 옷은 3~4년을 기준으로 그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은 버렸다.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은 꼬마의 동의가 필요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던 꼬마도 이젠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고 설득했더니 자신의 장난감과 책들을 선별해 주었다. 10년 넘게 책장에 꽂혀 있기만 했던 책과 논문을 쓰려고 모아 두었던 자료들도 과감하게 종이 버리는 날 버렸다. 내가 물건을 버리면서 혼자 웃었던 것은 밥도 해 먹지 않은 집에 그릇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음식하기에 재주가 적은 나는 이 많은 그릇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주변사람들에게 가져 가라 했더니 좋아하셨다.

어떤 유명한 인테리어가 집을 꾸미는 비법 중 하나는 가구를 많이 두지 않고 집을 비워 두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필요한 옷가지와 책과 물건들만 남겨두니 가구가 정리가 되었고, 그 덕에 간결한 집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너무 열심히 실천했다고 했더니 나의 소비생활 덕분에 우리나라 경제가 그나마 활성화되고 있는데 왜 그러냐고 해서 한참 웃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여러 방법 중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은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그 환경 속에는 내 마음이, 내 추억과 기억과 익숙함이 함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를 바꾸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를 갖기 위해서 버리는 것은 결국 내가 버려야 할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