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다>5세 지능 발달장애인 이태승씨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다>5세 지능 발달장애인 이태승씨
  • 정원경
  • 승인 2013.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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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승씨의 일기속엔 '내일'이 살고 있다
▲중증장애인 일자리 사업 일환으로 경남농업기술원에서 근무하는 발달장애 3급인 이태승씨(사진 맨왼쪽)가 최복경원장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오태인기자
 
“안녕하세요?” 오전 9시 40분 진주시 초전동에 위치한 경남도농업기술원에서 한 젊은 청년이 우렁차게 인사한다. 먼저 출근해 있던 한 아주머니는 “태승이 왔냐”며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이들은 이내 오늘의 날씨 얘기와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누구나 이태승(27)씨가 5세의 지능을 가진 발달장애 1급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매일 아침 혼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태승씨는 농업기술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즐겁다.

“농업기술원에 오면 형, 누나도 만나고 이모들도 잘해 준다”며 “집에 있는 것보다 농업기술원에 와 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태승씨는 작년에 이어 올해 재채용되면서 총무과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일하고 있다. 출근한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보일러 휴게실 안 작은 칠판을 확인하는 일부터다.

칠판에는 오전 10시 쓰레기 분리수거, 10시 반 화장실 점검, 계단 및 창문 청소, 오후 1시 본관 주위 청소 등 시간대별로 하나씩 할 일을 적어 놨다. 칠판을 보고 자신이 할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오늘의 할 일을 확인한 태승씨가 분리수거에 나섰다. 몇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능숙하게 정리한다.

태승씨는 “집에서도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도 버리며 집안 일을 돕고 있다”며 “간단한 일들은 스스로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는 일을 하다가도 직원들이 지나가면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받은 직원들도 웃으며 응답한다.

태승씨는 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마칠 때까지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인사를 한다. 이 때문인지 농업기술원 직원들부터 최복경 원장까지 태승씨를 모르는 이가 없다.

최복경 원장은 “태승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잘한다”며 그중에서도 ‘태승이의 인사성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최 원장은 “항상 웃으며 먼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태승이를 보면 내가 장애인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며 태승씨에 대한 칭찬이 그칠 줄 몰랐다.

농업기술원 총무과 곽정훈씨도 “태승이는 항상 먼저 인사를 하고 맡은 일도 잘한다”며 농업기술원의 활력소인 태승이에게 상을 줘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경남도 농업기술원에서는 지난해 이어 올해도 태승씨를 비롯한 3급 이하 5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제공에 힘쓰고 있다. 이들의 노력은 장애인 고용센터와 타 도에서도 농업기술원을 벤치마킹할 정도로 유명하다.

도 농업기술원이 이렇게 열의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 사업을 통해 만났던 그들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복경 원장도 이 만남을 시작으로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더 적극적이게 됐다고 한다.

최복경 원장은 “그날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게 많았다”며 “장애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주변에는 태승이와 같은 장애인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쉽게 구하지 못한다”면서 “이들에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데 공공기관부터 앞장서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농업기술원도 장애인 일자리 사업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발달장애인이라는 점에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교육을 받고 이해해 나가면서 지금은 직원들 모두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총무과 송점순씨는 “태승이를 비롯한 5명 모두 제각기 잘하는 분야가 있고 책임감도 강하다”며 “바쁜 농사철에 이들이 해내는 몫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뿌듯하다.

태승씨의 아버지 이무섭(56)씨는 “태승이가 일을 하면서 성격도 밝아지고 즐거워하고 있다”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일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농업기술원에서 우편물 정리를 담당하고 있는 이나리(28)씨도 농업기술원에 오기 전까지 집에서 생활하고 말수도 적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가지고 나서는 가족과 대화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어 애견 유치원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농업기술원에서 일하면서 농사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태승씨와 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 농사에는 자신 있다는 강재모(31)씨는 앞으로도 농업기술원에 다니면서 농사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농업기술원을 다니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태승씨는 농기원에서 있었던 하루일과를 적고 하루를 반성한다고 했다. 오늘도 그는 칭찬 받은 일들부터 일하며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내일 할 일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원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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