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다]진주 대아고 특별반 '오민실'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다]진주 대아고 특별반 '오민실'
  • 정원경
  • 승인 201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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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벌레들의 '따뜻한' 행복 배달
▲19일 오전 진주시 옥봉동에서 진주대아고등학교 학생들이 줄을 지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오태인기자
 
자신의 꿈을 위해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우리네 고등학생들.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소외계층을 위해 연탄배달에 나선 고등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미담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따르릉”

지난 3일 오전 한통의 전화가 진주시 옥봉동 주민센터로 걸려왔다.

자신을 대아고등학교에 다닌다고 소개한 박태규(18·대아고2년)군은 뜻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친구들과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연탄배달 봉사를 하고 싶다는 것.

당시 전화를 받았던 김용환 사회복지사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돈을 모아 연탄을 구입하고 배달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라며 “학생들이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한게 기특했다”고 말했다.

박태규 군은 “지난해 12월 선후배 간담회에서 선배들이 연탄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며 “친구들과 뜻 깊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고, 연탄배달로 하여금 어려운 이웃들이 남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고 봉사활동 취지를 설명했다.

박태규 군 제안에 성적 상위자를 모은 특별반 ‘오민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받은 성적장학금 일부를 내놓으며 뜻을 같이했다. 이후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힘을 보태면서 당초 2가정에 400장을 배달하기로 되어 있던 연탄을 1000장으로 늘리게 됐다고 한다.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19일 오전 9시가 되자 건장한 대아고등학교 학생들이 옥봉동 주민센터로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든 학생은 어느 덧 50명이나 되었다.

이날 연탄배달을 위해 방역복을 가지고 왔다는 김우진(18·대아고2년)군은 친구들에게 옷을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얀 방역복을 입은 학생들은 서로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웃음을 참지 못했다. 덕분에 모두들 웃으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옥봉동 주민센터 김용환 사회복지사와 김경숙 사회복지사의 안내를 받아 첫 배달을 간 곳은 3층 작은 방에서 홀로 사는 정기효(72) 할아버지 댁.

학생들은 한 줄로 길게 줄지어 서 연탄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해 한 장씩 할아버지 연탄창고에 차곡차곡 쌓았다. 연탄을 처음 본다는 학생들은 신기해하며 “아직 연탄을 쓰는 집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빈 창고 안이 이내 연탄으로 가득 채워지면서 학생들은 뿌듯함을 느꼈다.

김호성(18·대아고2년) 군은 “친구들과 함께 하니 힘이 덜 드는 것 같고 쌓인 연탄을 보니 뿌듯하다”며 “남은 겨울 할아버지께서 따듯하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웃음 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은 서로 속도를 조절해가며 손발을 맞춰나갔다. 손발이 맞춰지니 평소 못 나누었던 이야기꽃도 피우고 힘이 들면 학교 교가를 부르며 단합을 다졌다.

연탄배달을 받은 김옥수(63)씨는 “학생들이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좋은 일도 하고 고맙다”며 배달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대문 밖까지 나와 배웅했다.

다음 집으로 이동하는 학생들을 보던 한 주민은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학생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응원했다.

학생들을 지켜보던 이웃주민 임분이(61) 씨도 “학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마음씀씀이가 기특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집에 다다르자 학생들의 얼굴은 땀과 연탄으로 얼룩졌다. 평소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 연탄배달이 쉽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비탈진 언덕의 제일 높은 오정열(65) 씨 집까지 준비한 연탄 배달을 끝마쳤다.

배달을 마치고 주민센터로 돌아가는 학생들은 조금 지쳐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서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뿌듯함과 보람을 만끽했다.

쌍둥이 형 덕분에 참여하게 됐다는 이현호(18·중앙고2년)군은 “연탄배달은 처음 해보는데 생각보다 연탄이 무거웠다”면서 “그래도 쌓아놓고 보니 뿌듯하고 친구들과 단체로 봉사활동 할 기회도 많지 않은데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정오까지 옥봉동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등 5세대에 1000장의 연탄을 배달 무사히 끝냈다. 덕분에 조용하던 옥봉동이 따뜻한 정으로 넘쳐났다.

난생 처음 자신들의 힘으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기쁨을 맛본 학생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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