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의원님!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 경남일보
  • 승인 2013.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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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 부소장·건축학과 교수)
필자가 공부하던 독일의 도시에 가끔 들르는 프랑스 파리의 한 여자 유학생이 있었다. 사진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고가의 독일 사진기를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왔고 내친김에 친구도 만나곤 했다. 당시 미혼이었던 우리들은 국경을 넘어선 친분을 쌓으며 함께 맥주도 마시고 즐거운 담소도 나누곤 했다. 사실 외모와 관련해서는 그녀는 유행을 주도하는 매력적인 전형적 파리 여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광대뼈 얼굴, 거칠어 보이는 피부, 날씬하지 않은 몸매를 가진 서른 살을 훌쩍 넘긴 매력 없는 노처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극단적인 스트레스는 없어 보였고 소박하고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늘 재미있게 어울려 지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반대로 독일에 있던 우리가 파리로 놀러 갔었다.

항상 그렇지만 특히 1980년대의 파리는 매우 매혹적인 현대도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국가 핵심정책으로 도시재생, 공공디자인, 건축 및 신도시 사업 등에 초점을 두었다. 이 때문에 도시는 전통적 바탕 위에 초현대적 건축물, 광장, 시설물 등으로 단장되어 그 위용과 매력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따라서 관광객이 밀려들었고 특히 주말이면 도시공간에는 사람들로 득실댔고 활기가 넘쳐 났다.

도심을 돌아다니다가 퐁피두센터 옆에 있는 스트라빈스키 분수의 노천 카페에서 따사로운 가을 햇볕 아래 커피를 마시다가 파리의 그 유학생이 문득 말을 건넸다. “제가 무슨 힘으로 살아가는지 아세요?” 나는 그냥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녀는 특히 주말이면 도심의 광장과 거리를 산보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또 거꾸로 자기도 보여줌으로써 즐거움을 공유하며 새 힘을 얻는다고 했다. 사실 혼자서 살아가는 노처녀 유학생의 삶의 원동력은 도시공간에 있었던 것이었다. 이는 낯선 외국 유학생활의 외로움을 떨쳐내느라 힘에 겨웠던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필자가 살았던 슈투트가르트는 기계 및 자동차의 첨단도시면서도 도심에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정원과 공공 공간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도시의 메마른 삶의 오아시스였고 충전기였다.

최근에 또다시 터진 유명인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또 한 번 파장을 던지고 있다. 사실 우려스러운 것은 높은 자살률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남녀노소나 빈부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뿐만 아니라 연예계 톱스타, 최고의 운동선수, 돈 많은 그룹회장 그리고 심지어 어린 학생까지도 불행해서 못살겠다고 가버리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일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필자는 파리의 노처녀 유학생을 생각하곤 한다. 만약 파리의 활력공간이 없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풀어주는 유일한 공간은 술집이나 노래방 정도일 것이다. 좋은 정주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먹는 것, 입는 것과 더불어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다. 핵가족시대인 오늘날 삶이 힘들고 지쳐서 미치거나 죽고 싶을 때 가족 외에 기댈 곳은 사회 공동체이다. 이를 눈이나 피부로 느끼는 곳이 바로 도시의 공공 공간이기 때문에 이를 잘 만들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몇 년 전에 경관법이 만들어졌고, 최근 지자체 이행의 강제규정을 골자로 하는 전면 법 개정이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경상남도 의회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다. 금년도 예산심의에서 겨우 30억원도 되지 않은 도시 공공디자인 사업의 대부분을 삭감해 버린 것이다. 상류층인 의원님들은 어쩐지 몰라도 삶이 힘겨운 일반시민에게는 도시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거의 해마다 가다시피하는 외유에서 배워 오라는 좋은 도시공간의 가치는 도외시하고 혹시 쇼핑이나 고급술만을 즐기고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건축과 도시 공공디자인은 사치품이 아니라 파리의 노처녀 유학생을 살렸던 생활필수품이며, 시민에게 만족감과 삶의 의욕을 북돋아 주는 영양제임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경상남도 의회의 최소한의 전문성과 이해력을 촉구한다.

/최만진·경상대 EU연구소 부소장·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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