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굶고 가야 제대로 한잔 먹는다는 이곳
밥 굶고 가야 제대로 한잔 먹는다는 이곳
  • 임명진
  • 승인 2013.0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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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독특한 먹을거리를 찾아서 <진주 실비>
우리나라는 바다, 강, 산, 들판 등 자연환경이 빼어나면서도 지역마다 독특한 고유의 아름다움도 갖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에서 나오는 특산물의 다양성은 그 지역만의 유일하고, 특별한 먹거리 문화를 가능케 했다. 특히 경남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 마다 생산되는 특산물이 더 다양하다. 도내 각 지역에서는 생산되는 특산물을 재료로 해 지역민의 체질과 지역특성에 맞게 먹거리로 승화시킨 음식문화를 갖고 있다. 이같은 음식문화는 그 지역을 특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본보에서는 경남 곳곳에 산재해 있는 독특하고 유명한 먹거리를 찾아 보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진주실비 안주
실비안주
 


<1> 진주 실비

‘진주 실비’하면 진주와 사천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단어이다. 진주·사천 등 서부경남에서 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술 문화를 지칭하고 있으나, 술과 관련된 의미가 전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비’란 술값만 받고 안주는 무료로 제공되는 진주 등 서부경남 일대에서 유행하고 있는 술집들을 통틀어 일컫고 있다.

마산의 통술집, 통영의 다찌와 비슷하다고 하나 조금 다르다.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술을 즐길 수 있는 점에서는 비슷하나 ‘실비’만의 독특성을 갖고 있다. 마산 통술집은 안주 값을 받으나, 실비집에는 안주 값을 전혀 받지 않는다. 통영 다찌집은 처음부터 안주상에 차려지나, 실비집에는 코스 요리 처럼 기본상이 차려진 뒤에 한가지씩 계속 이어져 나오는 것이 다르다. 술병 숫자에 비례해 안주의 가지수도 늘어나는 것도 실비의 독특성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술 매상고에 따라 안주의 질과 양이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지만 서민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이라는 점에서 실비집은 통술집이나 다찌집과 같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하는 등 가장 대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안주는 제철에 나는 지역 특산물이 주종을 이루는데 삼천포 바다가 가까이 있다 보니 해산물류가 많다. 실비집 마다 안주의 질이나 양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술 종류는 주로 맥주이다. 간혹 소주를 요청하는 손님들도 있어 소주도 준비는 해두고 있다. 술 종류에 대해 손님들의 선택권이 있는 반면 안주 선택권은 없다. 안주는 주인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것이 실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실비’ 유래

맥주를 팔면서 안주를 무료로 제공하는 술집을 두고 왜 ‘실비’라 했는지 진주사람들도 그 어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단지 ‘실비’란 말 그대로 싼 가격인 ‘실비(實費)’만 받고 파는 집이라는 뜻에서 그리 자연스럽게 불리어졌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애주가들에 따르면 1970~80년대 중앙로타리 기업은행 뒷편에 안주를 공짜로 제공하던 ‘옥이집’, ‘남이집’과 계동(현 우리은행 뒷편 차 없는 거리)에 안주 값을 싸게 해 서민들을 대상으로 술을 팔던 ‘화랑집’, ‘신라집’ 등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실비만 받고 술을 팔았다고 해서 ‘실비’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실비집은 도심 및 외곽 할 것 없이 많은 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어 진주지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화랑집과 신라집 등과 같은 선술집들이 쇠락하고,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시내 중심가(계동과 본성동 일대)에 ‘○○실비’, ‘○○다찌’라는 상호를 단 선술집이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안주를 무료로 무제한 제공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진주에는 실비집이 생겨나면서 지금의 실비문화가 형성됐다.

진주 실비는 1990년대 중반까지는 급격히 번창했다. 우리나라 전체가 그러했듯이 진주 실비도 IMF 때 큰 타격을 받았다. 손님들이 뚝 끊기면서 폐업이 속출했다. IMF 위기를 극복한 2000년대 넘어서면서 진주실비는 다시 번창하기 시작, 옛 명성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실비 찾기

진주에서 유흥주점을 찾다 보면 ‘○○실비’라는 간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진주를 처음 찾은 외지인들은 ‘○○실비’라는 곳에 대해 의문부터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음식점인지, 아니면 술집인지 간판만 보아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실비집에 들어서면 ‘선술집’임을 알게 된다. 실비집은 진주 전역에 산재해 있지만 주로 아파트 밀집지역 주변에 가장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진주에서 대규모 아파트가 밀집된 신안동지역의 실비거리가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20 여개에 가까운 실비집이 밀집돼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신안동 실비골목에 가자고 하면 단번에 택시기사가 데려다 준다. 실비거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90년 초반 신안동 일대가 개발, 신흥주거지역으로 급성장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대규모 아파트 주민들을 주 고객으로 한 실비집이 신안동 동사무소 뒷편 거리에 하나 둘 자리잡기 시작했다. 2000년대 넘어면서 실비집이 점차 증가해 지금의 실비거리가 만들어졌다. 또 하대동지역도 신안동지역 처럼 실비거리까지는 형성돼 있지 않지만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밖에도 대규모 아파트가 있는 지역은 물론 상가들이 밀집한 지역에도 영업을 하고 있는 실비집을 찾을 수 있다.

◇ 밥집과 같은 술집

실비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식사를 하고 오면 안된다는 것이다. 술값은 맥주 1병 5000원선, 소주 1병에 1만원선이다. 안주는 무한 리필된다. 물론 공짜다. 그래서 식사를 하고 오면 푸짐한 안주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주를 밥 대용으로 해도 넘쳐 남겨 놓을 정도 그 양이 많다. 처음 오는 손님들은 실비집에서 두번 놀란다. 한번은 안주가 너무 많이 나와 ‘술값이 엄청 많이 나오겠구나’하면서 놀라고, 뒤에 계산할 때 ‘술값이 너무 적게 나왔네’하며 두번 놀란다

안주는 주로 해산물이 오른다. 아무래도 삼천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비집에는 메뉴판이 따로 없다.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오는 식이다. 삶은 게, 회, 부침개, 전복, 개불 등 처음부터 유명 횟집 못지 않게 안주가 쏟아져 나온다. 양도 양이지만 해물들이 싱싱하다. “매일 새벽에 직접 삼천포에 가서 신선한 해물을 가져 온다”고 주인이 자랑한다. 이후에도 구이와 찜 등이 잇따라 상위에 놓여진다. 술상이 비좁을 정도다. 술상에 입맛 당기는 안주가 가득한 데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맛있는 안주들이 계속 줄을 잇는다. “이제 그만 가져왔으면…”하는데도 계속 안주가 나온다.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올 때면 조개탕이나 미역국 등 해장국이 나오고, 시원하게 속풀이까지 책임진다. 이때 쯤 되면 더 이상 먹지못할 정도로 배가 부르다. 배가 불러 안주를 남기고 오는 술집이 바로 ‘진주실비’다.

◇분위기

실비집의 주 고객층은 40대 이상 중장년층 남성이다. 연령대가 높은 층이고 분위기가 왁자지껄하다 보니 30대 이하 청년층과 여성 손님들은 그리 찾지 않는다. 특히 실비집에서는 옛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유명 실비집에 가면 테이블 마다 친인들 천지다. 인맥이 넓은 사람은 이쪽 저쪽 테이블을 찾아다니며 인사하기 바쁘다. ‘한잔하고 가라’며 다른 테이블에 있는 손님을 초대하는 모습은 흔히 보이는 광경이다. 또 나눔의 정경이 자주 연출되는 곳도 실비집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인이 술을 가져 온다. 주인 왈 “저쪽 테이블에 5병만 넣어 줘라”고 했단다. 술을 다 마시고 난 뒤 계산대에 들어서면 이미 계산이 돼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앞에 나간 친인이 계산을 했다며 ‘그냥 가라’고 한다. 그리고 서로 계산하겠다고 친구간 승강이하는 모습도 연출된다. 진주지역 실비집은 술집이라기 보다는 정이 오고 가는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이러한 정감이 힘들게 하루 일상을 끝낸 서민들의 발걸음을 실비집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임명진기자

◇실비집 선택 팁

진주지역 실비집 모두 안주가 푸짐하고 싱싱한 것이 아니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비집도 간혹 있다. 그래서 진주지역의 실비문화를 잘 알고 있는 친인과 동행하면 진정한 ‘진주실비문화’를 만끽할 수 있다. 모든 실비집에서 푸짐하게 안주가 나온다는 큰 기대를 갖고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특히 유명 실비집은 저녁 이른시간대부터 손님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늦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진주실비골목1
진주시 신안동 주택가에 위치한 진주실비골목에 실비집들이 간판불을 켜고 영업을 하고 있다.오태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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