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허세의 나뭇잎과 탐욕의 열매를 털어내고는 마침내 더는 버릴 것이 없는지 앙상한 뼈대로만 서 있는 겨울나무들. 참회하듯 피하지도 거부하지도 않고 제자리에 선 채로 목숨의 진수만으로 그의 고행을 감당해 내야만 하는가. 맵고도 차가운 칼끝 같은 아픈 바람에 찔리고, 할퀴고, 매운바람에 무차별 채찍질을 거듭 당하면서도 그냥 그대로 묵묵히 서있는 나무들. 지난여름에는 뙤약볕 아래서도 당당히 푸름을 자랑하던 잎새들이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목숨이 지닌 역겨운 탐욕을 속죄하고, 참회하고, 그리고 가장 고통스럽게 고행의 도를 닦으며 오직 자신의 넋을 구원받고 있을 뿐이다.
발가벗은 맨살 맨몸으로 앙상하게 서있는 여린 나무들까지도, 몰아치는 바람이 채찍을 치는 대로 그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 내고만 있다. 참으로 죄 없이 살아온 것 같은 그 여린 목숨조차도, 이 가혹스런 계절의 고행을 달게 받으면서, 목숨 속에 숨겨졌던 잘못을 뉘우쳐 참회하느라, 바람에 떨고, 눈서리에 얼고, 더러는 꺾어지고 부러지는 수난도 전신으로 이겨내고만 있을 뿐이다. 우리들 역시 저 초목보다 더 못한 인간으로서 불끈대던 욕심의 대가를 가장 혹독하고 참혹하게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나긴 겨울밤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평범한 우리들의 삶을 얘기하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진솔하고 거짓 없는 마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뉘우쳐야 한다. 진정 겨울은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하여 속죄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이 아닌가. 바라건대 우리의 영혼이 비록 미비할지라도 스스로를 치고 때리고 아득하도록 모질게 다스려 삼동의 고행을 거친 다음에야 하얀 눈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새기듯 아름다운 생명하나로 새롭게 태어나기로 하자.
나무도, 마른 풀포기도, 들도, 산도 이 세상 모두가 새하얀 눈에 덮여 그저 황홀할 뿐인 세상. 따스한 햇살을 온몸에 휘감으며 은백색의 정결하고도 거룩한 눈길에 발자국을 수놓아 가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진정 자신도 모르게 눈 위에 무릎을 꿇게 되고, 그저 감격스럽고 황송스러워 눈 속에 엎드려 말없이 울 수밖에는….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 나쁜 욕심들이, 인간 본위의 탐욕이 비워졌을까. 그저 한없이 편안하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리라. 이제 기쁨의 눈물만 두 눈에 가득히 채워진다면, 아아, 우리는 마침내 새로이 태어나는 경건한 영혼을 소유하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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