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탈출 교육
빈곤 탈출 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3.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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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 동명고 교감)
특정 언어를 익히거나 문화를 이해하려할 때 가장 어려움에 봉착하는 곳에 관용어(慣用語)가 도사리고 있다. 관용어는 ‘일반적으로 습관이 되어 늘 쓰는 말’로 둘 이상의 낱말이 결합하여 제3의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의미 단위를 가리키기에 각 단어가 지닌 기본적인 의미로는 그 전체 의미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관용어는 대부분 비유적 표현이기 때문에 말이나 글에 변화를 줄 뿐 아니라 짤막한 몇 마디 말로써 풍부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우리 국어의 관용어는 지금까지 조사된 것만 약 4000여 항목이 있고 그 중에는 가장 비극적인 의미를 가진 ‘허리띠를 졸라매다’도 있다. 이 말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거나 마음 먹은 일을 이루려고 새로운 결의와 단단한 각오로 일에 임할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배고픔을 참다’란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 먼 길을 가거나 힘든 농사일에서 허기가 질 때 들어간 배에서 바지춤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선 자꾸 허리끈을 졸랐을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허리띠가 양식이다’는 말이나 ‘허리띠가 길양식’이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유년시절, 구멍 난 양말을 꿰매 신거나 째진 검정고무신을 실로 꿰매거나 고무로 때워 신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구멍 난 냄비나 해진 옷가지는 말할 것 없었다. 요즘 같은 겨울의 점심은 으레 잔반을 넣은 김치국밥에 삶은 고구마 두어 개, 동김치 한 사발이 고작이었다. 그 시절 어른들은 맹물로 배를 채우거나 허기진 배에 허리띠를 졸라맸고, 학생들은 호롱불 밑에서 밤 늦도록 책장을 넘기면서 슬프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이겨내어 오늘의 풍요를 일궜다.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 사회도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복지가 주된 관심사이고 반값 등록금은 이 시대 정치인이나 대학생들의 화두다. 저소득층 대학생 자녀들에게 지원하는 국가장학금은 일정 학점(직전 학기 12학점)을 이수하고 소정의 성적(평균 B학점)을 취득하면 소득 분위에 따라 차등으로 장학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공부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학점과 성적에 상관없이 장학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한 발상이다. 무조건적 지원은 가난에 대한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끝없는 거지근성만 배양시킬 뿐이다.

부유하고 가난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태생적으로 빈부가 결정되기도 하지만 ‘3대 부자 없다’는 말처럼 후천적인 요소도 많이 작용한다.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몰락한 부자나 가난을 이겨낸 사람들을 많이 봐 왔는데 ‘허리춤에 빗 넣고 시집온 색시 잘산다’는 말처럼 빈부는 개인의 의지나 생활태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기에 가난은 부끄러울 것도 아니지만 자랑거리는 더더욱 아니다.

가난에도 비단 가난이 있긴 하지만 가난과 거지는 사촌 간이다. 그래서 거지를 면하려면 가난한 부모는 더 세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눈자위 주위에 물파스를 발라가며 밤새워 책을 읽어야할 것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지 않는가, 오직 처절한 노력이 수반된 개인적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문형준·진주동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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