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강부회(牽强附會)의 커피문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커피문화
  • 경남일보
  • 승인 2013.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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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지구는 지구촌(global village)이다. IT기술 30년 동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보다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에 사는 이웃에게 인사를 전하는 것이 더 빠른 시대가 되었다. 물론 기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기술은 코드화된 부호로 구성돼 세계의 공유가 가능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렇지 않다. 종교, 예술과 전통, 사고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화라서 코드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바꾸기도 쉽지 않다. 인간정신의 지구촌이라 할 만한 것은 그래서 아직 요원하며, 더욱이 구하여 바랄 것도 아니다. 문화는 차이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태학적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에서 생겨 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테면 커다란 육체를 가지고 육식을 주로 하며 치즈와 햄버거,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미국문화와 한국문화는 다르다. 작은 육체, 채식과 생선, 유연한 된장과 매운 고추장, 고기를 잘게 잘라 먹는 한국인들에게 그러한 미국문화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생태학적인 문제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 커피문화에는 생태적인 어긋남이 있다. 대학생들의 경우 심한 것이 프랜차이즈화된 가게에서 라면과 김밥, 떡볶이로 점심식사를 하고, 한 번에 마시기도 힘든 많은 양의 커피를 연이어 마신다. 떡볶이 가게와 커피숍이 나란히 있어 이 두 가게를 오락가락하는 이들을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서양인들과 똑같은 크기의 브랜드 커피를 마시는 것도 그렇지만 커피값이 식사값과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경우도 있다.

근본에서 본다면 된장국과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한꺼번에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 근대 서구문명이 동양문화를 후진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합리적인 낮은 차원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으로 치장한 것을 한국인들은 그대로 인정해 왔다. ‘삶은 달걀’과 같은 행동이다. 겉으로는 흰색(백인)문화를 추종하고 실제 자신의 속은 노란색(황인)이란 것이다. 이렇게 남의 문화를 함부로 빌려다 쓰면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되거나 탈이 나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예로 신자유주의를 생태학적으로 유비해 보자. 서양의 식탁문화에 따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데 모여서 놓인 음식을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가져다 먹는다. 이때 가족 간 위계질서와 배려는 식탁에 없다. 각자 정해진 음식의 양과 순서만이 있을 뿐이다. 철저한 개인주의다. 개인주의와 정량적 철학 속에서 태어난 서양의 신자유주의는 순서에 따라 정해진 음식을 개인적으로 탈취해 가는 경제다. 자본을 먼저 만질 수 있는 순서에 따라 자본이 독식된다. 시장과 자본의 위계질서는 당연히 존재함에도 마치 없는 듯이 모두가 평등하다고 선전하면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시장유통과 자본을 독식해 버렸다.

이런 위선적인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우리사회는 지금 양극화와 승자 독식의 배려 없는 사회로 변해 정신문화마저 병들어 버렸다. 한국의 밥상문화는 마치 케인즈와 프리드먼를 융합해 놓은 듯하다. 가족 구성원의 높낮이에 따라 위계질서가 철저하다. 반면 독상을 받는 사람은 집안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다. 상을 물리면 2차집단인 여자와 아이들 여럿이 겸상으로 받아먹는다. 이때 윗사람은 독상의 음식을 독식하지 않는다. 생선토막을 뒤집어서 먹지 않는다. 밥을 절반 정도 남기는 것은 윗사람으로서 식사예법이다. 식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 할 것이다. 가부장적인 우리 밥상문화 속에는 현재의 양극화를 극복할 배려와 공생공존의 철학과 덕목이 들어가 있다.

근대 서양에서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했다면 현대에는 존재할 수 없다. 서양의 근대적 가치는 21세기 들어와 이미 충분한 한계에 도달했고, 동양은 미래사회를 활짝 열 수 있는 미와 정신적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문화와 생활세계를 망각하고 선진 서양 커피문화를 함부로 맹종하는 한 우리는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 사유해 우리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결연한 주체의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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