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공기 맞으며 산의 맨몸을 만나러 가는 길
시린공기 맞으며 산의 맨몸을 만나러 가는 길
  • 경남일보
  • 승인 201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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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무척산 모은암
2.무척산 등산로(윤위식)jpg
 
한겨울의 추위를 즐기는 여러 가지의 방법 중에서도 겨울등산의 묘미를 덮을게 없다. 전문산악인이 즐기는 정상정복의 성취감보다는 야트막한 산이라도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제마다의 얼굴을 삐죽빼죽 내밀고, 이따금 겁 없는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울쑥불쑥 치솟아 우쭐거리는 바위산이면 이맘때가 낙목한천이라 시야가 트여서 겨울나들이 치고는 제격일 때이다. 기암괴석들이 적나라하게 알몸을 들내고 기기묘묘한 자태를 거침없이 뽐내고 있어 보는 이의 심경에 따라 천지창조의 만물상을 즐길 수 있는 풍광의 멋과 정취의 맛이 어우러진 모은암이 자리한 무척산이 생각나서 길을 나섰다.

남해고속도로 동창원 IC에서 차를 내려서 14번도를 따라 김해방향으로 가다가 좌회전을 하여 한림면을 경유 생림면 소재지에 닿아 봉림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생림초등학교 앞을 지나자 이내 무척산 등산로를 알리는 황토색 표지판이 길마중을 나와 섰다. 표지판의 안내를 따라 우회전을 하면 금방 말끔하게 단장된 무척산 주차장이 널따랗게 자리를 내어준다. 평일이어선지 주차장은 승용차만 여남은 대 뿐이고 텅하니 비어있어 위에 있는 작은 주차장에도 빈자리가 있겠지 하고 2~3분 거리에 있는 작은 주차장까지 차를 몰았다. 먼저 온 네댓 대의 차량 옆으로 딱 한 자리가 용케도 남아 있었다. 간편한 등산화로 갈아 신고 달랑 김밥 한 줄과 물 한 병이 든 작은 배낭만 둘러메고 카메라만 챙겨들면 “준비 끝” 이다. 다들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것 같은 차림들이지만 요란을 떨면 길을 나서기가 어려워져서 필자의 장비는 언제나 단출하다. 여느 때는 배낭도 없이 신발만 바꿔 신는 게 전부였지만 오늘은 백두산 천지 말고 유일하게 무척산에도 천지가 있어 거기까지 오를 요량으로 배낭이라도 챙긴 것이다.

여기서도 찻길은 더 이어져 있으나 모음암까지는 5~600m에 불과하고 경사도 급하거니와 일반차량의 출입도 금지돼 있다.

바람도 없는 쾌청한 날씨지만 차가운 공기는 여간 매섭지를 않아 오지랖의 매무새를 다시 고치고 정상 쪽의 스카이라인을 따라 천천히 훑어보았다. 거대한 바위들이 여기저기서 울쑥불쑥 솟아올라 끝은 두루뭉술하여 부드럽고 순하다 싶은데 덩치가 너무 커서 위압감을 느끼게 하고, 바위틈새마다 흐르던 물이 얼어붙어 빙벽을 이루는데 머리 위쪽 어디선가에서 가느다랗게 들여오는 목탁소리가 나뭇가지 하나 흔들림이 없는 정적을 여울지우며 고요함을 더욱 그윽하게 물들인다.

차가 오를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자 메주덩이만한 돌을 촘촘하게 바닥에 박아서 갈지자(之)형의 정갈한 길이 굽이굽이 이어지는데, 손때 묻고 모지라진 대빗자루가 바윗돌에 기대서서 소곳한 자세로 정중히 길손을 맞이한다. 삼라만상이 깨기도 전인 새벽녘에 여명을 걷어내며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리고 또 이어지는 내일도 그러하실 희끄무레하게 비질을 하시는 스님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소리 없이 밟고 오실 누구를 기다리며 이토록 돌이 닳아 반들거리도록 쓸고 또 쓸었을까? 아니면 모질고도 질긴 연을 기어이 끊으려 가랑잎 한 낱 남김없이 쓸고 쓸었던가? 밤새도록 염불하고 면벽하며 정진하고, 목탁 치며 속죄하고 범종 치며 용서하고, 법고 치며 잊자 해도 속세의 질긴 연을 떨치지 못하여서, 가슴을 후벼내듯 틈새까지 쓸어내며 반들반들 돌이 닳도록 쓸고 또 쓸었단 말인가? 번뇌의 자국까지 쓸어낸 돌계단을 오르자 목탁소리가 커지고 염불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바위가 발끝을 내어주는 길을 돌아드니 기암거석의 틈새를 가까스로 비집고 앉은 절집 모은암에 닿았다.
 
1.모은암(윤위식)jpg


모은암 마당에 발을 디디자 기암괴석의 웅장한 바위들이 작은 절집을 포근히 감싸며 병풍처럼 둘러쳤다. 마주한 극락전은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도 않고 아담하고 정갈하여 산사의 고즈넉함을 오롯이 품어내며 작은 당우를 옆에 두고 나직하게 앉았는데, 좁다란 마당에는 거대한 바위가 배를 불리고 기다랗게 누웠다. 모암인 어머니바위라고 오르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었다. 마당 왼쪽으로의 범종각은 범종의 소리를 어머니의 소리로 들으라는 ‘모음각’이라는 현판이 걸렸고, 그 옆으로 커다란 바위 뒤에 숨겨둔 듯이 산신각이 처마 끝만 살짝 내밀고 빼죽하게 넘어다보고 있다. 모음각 뒤로는 봉긋한 연꽃봉오리를 닮은 연화봉을 옆에 끼고 바위 틈새에 끼워 둔 듯 아담한 칠성각이 높다랗게 앉았다.

가락국 2대왕인 거등왕이 모후인 허황후를 기리며 지었다는 모은암 극락전에 들어서자 사시불공의 공양예불이 이어지고 있어, 헌향삼배의 예를 갖추니 호신불 같이 자그마한 본존불인 아미타불상이 불단위에서 소곳하게 내려다보시며 연방이라도 무엇인가를 물어 볼 듯이 잔잔한 미소로 굽어보신다.

예불에 방해될까싶어 숨을 죽이고 극락전을 나서니 희끗희끗한 기암거석의 바위산을 양 날개삼아 두둥실 창공을 나는 기분인데 저 멀리 낙동강과 밀양강이 합류하는 그림 같은 전경이 발끝아래에 아득하다.

극락전 모퉁이에 관음전을 안내하는 팻말이 있어 온통 바위뿐인데 잘못 붙은 것은 아닌가 하고 뒤로 돌아드니 커다란 바위가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선 틈새인 바위굴이 족히 여남은 평은 됨직한데 관음보살상은 수유를 하듯이 아기를 안고 좌정하고 계셨다. 관음굴 뒤로 능선에 높이 솟은 남근석은 우람하고, 모은암 굽어보는 미륵바위 웅장한데, 관음전은 석굴 속에 없는 듯이 자리 잡고, 산신각은 바위 뒤에 숨은 듯이 앉았으며, 칠성각은 바위틈에 끼워두듯 얹혔으니,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이 천년 심산고찰, 이리 봐도 비경이요 저리 봐도 절경이다.

사시예불을 막 끝내신 추암스님은 경주의 백석을 다듬어 옻칠을 하고 개금을 두텁게 올린 본존불인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의 정교하고 수려함을 설명하며 절문 앞에 치솟아 깎아지른 듯이 수직으로 선 수 십 길 높이의 바위절벽에 커다란 공을 뽑아 낸 듯이 동그란 구멍은 자연적으로 생긴 혈로서 그 옛날 원효대사께서 좌선을 하셨다는 구전이 마을사람들로부터 전해 오고 있다하며 그 옆으로의 봉긋한 바위가 연화봉이라고 일러준다.

모은암 향 내음을 뒤로하고 천지를 찾아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접어들자 길은 갑자기 바위틈 사이사이로 끊어질듯 이어지며 가파르고 험난했다. 겹겹으로 빼곡한 바위들이 하나 같이 수 십 길 높이로 치솟았다 싶으면 또 수 십 길 깊이의 낭떠러지가 발끝을 저리게 한다. 바위마다 특이하게도 동그랗게 홈이 숭숭 패여 있다. 밤톨만 한 것도 있고 어른 주먹만 한 것도 있어 크기는 각각이지만 빼곡하게 촘촘히 패여 있어 작은 새들이 둥지로 팠을까 아니면 옛날 옛적에 천연두를 앓아서 마마자국을 남긴 것일까. 오묘한 자연의 조화를 내 어찌 알랴만 막아서는 바위를 비껴서 돌아가면 또 한 바위가 느닷없이 막아서고, 비껴가면 막아서고 막아서면 비껴가고를 거듭하다가 천정까지 덮어버린 틈새를 기어드니 “남쪽 통천문”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는데 마주본 또 하나는 “북쪽 통천문”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하늘로 통한다는 길이라니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원도 한도 털어내고 미움도 내려놓자! 버거웠던 짐인 줄을 진작은 몰랐던가. 끊어질듯 이어지고 닫힐 듯이 열려지는 굽이굽이 바윗길이 사람 사는 이치를 근엄하게 일러준다. 한참을 또 오르자 두 그루의 낙락장송이 나란하게 서서, 어깨동무를 한 가지가 서로 붙어버려 연리지가 되어버린 부부소나무까지 길마중을 나와서 반기는데, 높기도 하지만 넓기도 한 천지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얼음폭포를 이루며 장관을 펼쳐준다. 한참만에야 소나무 숲길이 밋밋하게 이어지는 분지에 다다르자 얼음장 밑에서는 이천년 역사의 애잔한 옛 얘기들을 나누는지 도란도란 울림소리를 내는 작은 도랑이 은빛을 번쩍거리며 길게 누었다. 도랑을 건너서자 하얀 은반을 깔은 듯이 꽁꽁 얼어붙은 무척산 천지가 눈앞에 가득하다. 분화구도 아닌 무척산정상의 널따란 천지는 가락국의 흥망성쇠를 말없이 지켜보며 애환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채 육모정인 통천정을 그림같이 띄워 놓고 찬란한 햇살을 한가득 머금었다.

 
4.무척산 천지(윤위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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