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장터 이야기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장터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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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주 (진주시의원, 복지산업위원회 간사)
“또 뭐할라꼬 왔노?”

“설탕 뿌린 풀빵 맛은 여기가 최고잖아요!”

“풀빵 맛이 다 똑같지 뭣이 다를라꼬. 자꾸 내한테만 오모 저 옆에 할매 또 역정낸다. 내일은 저 할매 것도 좀 팔아줘라. 내는 괜찮은께.”

시장 한켠에서 평생동안 풀빵장수를 하셨던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은 게 한참은 된 듯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국화모양 풀빵을 어쩜 그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단번에 갈고리로 콕콕 찍어 종이봉투에 착착 담으시는지.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오는데도 맨손으로 잡으시고 설탕 슬슬 뿌려주시며 하시던 마지막 한 마디,

“에라~기분이다. 두 개 더 넣었은께 맛있게 묵어라이.”

그 재미에 또 신이 나서 다시 찾게 되던 장터에는 이렇듯 늘상 풀빵장수할머니의 인정과 재미와 사랑과 배려가 함께 묻어나고 있었다. 시장은 이렇듯 나에게 잠시 쉬어가는 휴식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가끔 지친 일상 속에서 그래도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구수함이 넘치는 표정 속에서 봄햇살 같은 따사로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며 괜찮다고 덥석 손을 잡아주던 할머니도, 방금 얻어온 것이라며 콩고물 듬뿍 묻힌 쫄깃쫄깃한 인절미를 건네주던 옛날 국밥집 아주머니도 이젠 어디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게 돼 버렸다. 세월이 무심한 것인지, 인생이 무상한 것인지….

우리네 삶 속에서 사람냄새와 음식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희로애락을 이야기하고 시끌벅적하지만 정겹고 따스한 정이 오고 가면서 가장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던 곳은 바로 이런 소박한 장터가 아니었을까. 단순히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서만 장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만나는 재미에 신발의 먼지를 털어내는 곳, 때론 저마다의 가슴에 응어리진 묵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또 때론 싱거운 이웃집 아낙 안부를 물으며 웃음과 해학과 인심을 나누던 곳,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이웃마을 동네 뉴스거리에 막걸리 한사발 칼칼하게 들이켜고 나면 넉살 좋은 입담꾼의 익살스러운 이야기에 흥얼흥얼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 실랑이 하듯 한참을 밀고 당기며 되받아치기와 고집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도 결국은 ‘옛다. 고마 가져가라’며 한바탕 웃음으로 흥정을 끝내는 사람, 나물거리 몇가지 팔면서도 친절하게시리 맛깔스러운 맛내기 비법까지 전수하며 덤으로 한주먹 더 냉큼 하고 얹어주는 사람.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이곳에선 눈대중이 계산기고 저울이다. 약삭 빠르지 못하고 계산 바르지 못한 인심 좋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인정스럽게 묻어나는 곳, 이곳이 바로 장터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사람냄새 폴폴 풍기며 질퍽한 웃음이 끊이지 않던 이곳에도 커다란 걱정거리가 생겨나고 말았다. 도시산업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를 앞세운 대형 마트들이 생겨나면서 이들의 생존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차원의 지원정책들이 앞다퉈 나오고 있으나 제도적 뒷받침보다 앞서 달라져야 할 것은 이미 편리함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습관과 시민들의 의식의 변화이다. 노후된 전통시장의 현대화 시설개선 사업이라든지 온누리상품권 사용의 확대, 시장주변 주차시설 확보 등으로 전통시장 활성화를 외치며 캠페인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우리들의 생활 속에는 사회변화로 인한 편리함이 더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녕 우리네 발길을 다시 인심 좋은 장터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라고 이것은 상품이 안되는 것인께 고마 가져가서 무라. 계산은 안했다이~.’

또 덤으로 뭔가를 싸주시는 아주머니. 스치듯 나를 미소 짓게 만든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인정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람을 만나고 인정을 만나고 행복을 만나러 가는 시장. 올 설날에는 사람냄새 폴폴 나는 장터 사람들과 함께 그동안 각박한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옛날 추억 몇가지 떠올려 가면서 사랑과 배려와 마음 따뜻함을 함께 나누는 훈훈한 정이 넘쳐 흐르는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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