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져야 할 청문회
달라져야 할 청문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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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 수필가)
구약성서에는 여호와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여호와는 그가 택한 아브라함에게 이 도시의 부패와 쾌락이 하늘을 찔러 심판할 것이라며 그의 조카 롯과 그 가족을 구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도시에도 의인은 있다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노여움을 거둬 달라고 간청한다. 여호와는 의인 10명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롯은 의인 10명을 찾지 못했다. 결국 여호와는 천사 2명을 보내 롯과 그 가족을 구해내고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과 불바다로 만든다. 지금의 사해가 그 유적이라는 설이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무총리와 각료, 청와대 비서진 인선이 난항을 겪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총리후보로 30여명을 노크했지만 검증에서 또는 본인의 고사로 불발에 그쳤다고 한다. 경국지책을 가졌지만 신상털기가 두려워 고사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고 한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을 찾는 만큼이나 인재를 고르기가 힘든 세상이 됐다.

새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추천을 받았던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고 언론검증의 혹독한 바람에 뜻을 굽히고 말았다. 온 가족이 검증의 대상이 되고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보도되자 눈물을 흘리며 자진사퇴한 것이다. 물망에 오른 상당수가 같은 이유로 총리후보를 고사한 것도 청문회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곧 청문회 정국이 펼쳐진다. 국회는 이미 임시국회를 열고 대기상태다. 일정상 총리후보 발표에 이어 각료추천이 이번 주 중에는 이뤄질 전망이다. 언론은 추천인사에 대한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그 범위는 병역문제와 부동산 투기, 납세실적, 전과 등 기본적인 기준은 물론 자질구레한 신상털기 등 한정이 없다. 선대의 행적에서부터 사돈에 팔촌까지 낱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정작 청문회에 들어가면 공직 후보자들은 진실만을 진술할 것을 선서하고 공손하게 답변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공무를 담임하는 고위공직자로 가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다.

청문회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또한 고위공직자는 국민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엄중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청문회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한번쯤은 짚어봐야 한다. 청문회를 거친 공직자들의 상당수가 후일담으로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제대로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라는 자격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도 공직 추천자에게는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라고 한다. 심지어는 죄인 다루듯이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작 검증해야 할 업무수행 능력과 경륜, 경국지책에 대한 것보다는 신상털기가 우선이어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라는 반응도 많다. 존중돼야 할 개인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마저 유린당한다는 피해의식도 적지 않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적격여부를 예단하는 의원도 있다는 반응이다.

이제 청문회는 이런 지적과 호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엄중하게 검증하되 인격을 존중하고 최대한 예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큰소리와 된소리, 일방적인 몰아붙이기로 문(問) 은 있으나 청(聽)은 없는 고압적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점잖고 격의 있는 자세로도 얼마든지 검증은 할 수 있다. 큰소리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국민들도 이제는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청문회에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달라진 청문회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청문회를 통해 새 정부의 미래를 보고 싶어 한다. 새로 뽑히는 각료들의 포부도 듣고 그들이 구성하게 될 정부의 성격을 가늠해 보고 싶어 한다. 앞 정권과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고 희망을 싣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신상에 대한 문제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 시간을 적당히 지혜롭게 안배해 균형감각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의인은 없지만 그래도 의인에 가깝고 능력도 갖춘 인재를 찾는 과정은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말은 부드러우면서도 검증은 철저하게, 때론 웃음이 터져 나오고 위트와 유머도 간간이 섞여 나와 인구에 회자되는 그런 청문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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