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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전남 이적 '새로운 도전' 진행형<경남축구열전>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下)
임명진  |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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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2.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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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다. 한국 나이로 마흔 넷의 나이로 아직도 현역 프로축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그를 ‘기록의 사나이’, ‘살아 있는 전설’ 이라고 부른다.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K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의 골키퍼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축구인생을 들어보았다./편집자 주

◇남다른 운동재능

김병지는 판단력과 순발력이 좋은 골키퍼로 승부차기에 유독 강한 면모를 자랑하는 선수다.

100m를 11초대에 끊는 빠른 발은 골키퍼로서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했고 킥력도 좋아 페널티킥이나 프리킥을 곧장 차기도 했다.

골키퍼로서 남부러울 게 없는 재능을 갖고 있지만 단 하나, 지나친 적극성이 단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하지만 김병지는 누가 뭐래도 라이벌 이운재와 함께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골키퍼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골키퍼 재능은 언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을까.

김병지는 밀양출신이다. 밀양초등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축구선수가 아닌 육상선수였다.

“남들보다는 빨랐던 것 같아요. 3학년 부터 육상을 시작했는데, 하루는 학교 선생님들이 저를 보고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대뜸 축구를 해 보라는 거에요. 그렇게 멋 모르고 시작한 게 이날까지 이어져 온 거죠”

처음부터 골키퍼를 한 건 아니었다. 골키퍼와의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4학년 무렵 열린 전국소년체전 경남지역 평가전에서 김병지는 골키퍼로 출전했다. 당시 골키퍼 하는 친구가 다치는 바람에 떠밀릴 듯이 맡게 됐다.

그렇게 무작정 나간 시합에서 김병지는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잘해도 보통 잘한 게 아니었다.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최우수선수상에 골키퍼인 김병지가 수상을 해 버렸다.

대회 기간 김병지는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도내에는 강팀들이 여러 있어서 예선에서 탈락을 예상했나봐요. 학교에서도 하루 출장비랑 짜장면 값만 가지고 나갔는데, 우리가 예선 첫 경기를 이겨버리니깐 부랴부랴 숙박비 가져오고 한바탕 소동이 빚어진 거죠”

그 대회로 축구선수 김병지는 주목을 받게 된다. 어린 나이의 김병지는 골키퍼에 큰 매력을 느꼈을까.

“나름 공격수로도 공도 잘 찼어요. 어찌보면 당시는 본인의 의지보다는 지도자의 의지가 더 중요했던 시절이었죠”

그래도 그 지도자가 김병지의 재능은 정확히 알아 보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골키퍼 김병지가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후 김병지의 축구인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키 185㎝인 김병지가 키가 작아서 축구를 그만두기도 했었다니 놀랄 일이다.

“마산공고로 진학하면서 축구를 그만둔 적이 있어요. 당시만 해도 제 키가 작은 편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큰 편이었는데, 중학교 3년 동안 키가 안 크는 거에요. 결국에는 고등학교 1, 2학년 때 축구를 그만뒀는데, 아, 글쎄 쉬는 동안 키가 갑자기 한 20㎝ 가까이 훌쩍 커버리는 거에요. 다시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고, 마침 인근 소년의 집(현 알로이시에고)에서 골키퍼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전학을 가게 된 거죠”

다시 시작한 축구가 힘들 법도 했을 것이다.

“많이 힘들었죠. 당시에는 경제적인 부분도 있었고, 또 골키퍼 훈련이 지금처럼 체계화가 안돼 있었거든요. 낙법 부터 배워야 한다고 자전거 갔다 놓고 점프하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울면서 운동했던 시절이에요. 지금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절대 좋은 선수가 못될 겁니다”

◇골키퍼로 첫 해외 진출 타진

김병지는 여러모로 이슈를 몰고 다녔다. 그 중 하나가 꽁지머리 패션이다.

당시 투박하고 야성미가 넘쳐났던 K리그 선수들이 김병지로 인해 그야말로 패션 바람이 K리그에 불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그게 제 트레이드 마크가 되 버렸네요. 기본적으로 염색은 하지만 사실 그렇게 외형적으로 신경 써는 편은 아니랍니다”

아무래도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워낙 화려하고 유니폼이나 젊은 이미지가 이어지다 보니깐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하나, 김병지는 골키퍼로는 국내 유일하게 해외진출설이 불거졌다.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1995년 부터 브라질에서 구애도 받았구요. 98년 월드컵 갔다오고 나서도 영국쪽에서도 제의를 받았어요”

왜 가지 못했을까. 만약 갔다면 한국축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만한 사건이었을 텐데.

“지금은 많은 후배들이 해외리그로 나가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계약문화가 좀 달랐어요. 당시 소속팀이던 울산 현대도 저한테 많은 배려와 도움을 준 측면도 있었구요”

그렇게 해외진출의 길은 무산됐지만 김병지는 K리그에서 자신의 입지를 차근차근 구축해 나갔다.

◇600 경기 넘어 700경기 출전 도전

김병지는 새해 들어 정들었던 고향 경남을 떠나 전남 드래곤즈로 둥지를 틀었다. 팬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한 그이기 때문에 고향팬과의 작별은 아쉬움도 남을 터.

“아무래도 지난 해 FA컵 준우승이 가장 아쉬움이 남죠. 모든 사람이 승부차기까지 간다고 예상할 무렵 버저비터골이 나와버렸어요. 객관적으로 우리 팀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는데, 많이 아쉬웠던 경기였죠”

현재 김병지의 당면 목표는 신의손이 수립한 프로축구 최고령 선수(44년 7개월) 출전기록이다. 김병지가 42년 10개월 째이니 2년만 더 채우면 새로운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700경기 출장 대기록 달성도 가능해 진다. “지금 같은 컨디션이라면 앞으로 몇 년은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김병지는 명분 있는 은퇴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고 했다.

실상 그의 나이면 은퇴식을 그려 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터. “아이들이 다 축구를 하고 있는데, 나중에 프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저희 은퇴식이 아이들의 데뷔전이 되는 그런 은퇴식을 하고 싶어요”

올해부터 전남의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김병지. 젊은 선수들에게 삼촌뻘 되는 나이지만 아직 그의 축구인생은 진행형이다.

“아직은 제 실력에 확신이 있어요. 성원해 주시는 팬 분들에게 감사하고, 그분들이 있기에 또 제가 있는 거죠. 프로선수는 팬을 위해 운동하는 거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거잖아요. 팬을 위해 더 나은 모습과 경기를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병지는

▲밀양 출생(1970년생)

▲밀양초-밀양중-알로이시오고

▲울산 현대-포항 스틸러스-FC서울-경남FC-전남 드래곤즈

▲국가대표 경력 96년 AFC아시안컵 대표-1998년 월드컵 대표-2002 월드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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