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취임의 의의
박근혜 대통령 취임의 의의
  • 경남일보
  • 승인 2013.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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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대해서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여러 갈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냐, 보수냐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20대와 50대의 표심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또 더러는 박정희냐, 노무현이냐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차원보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 탄생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우리에게 있어 ‘여성 대통령’, 그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오바마는 피부색을 넘어 자신의 출중한 능력 하나로 미국의 주류세력을 등에 업고 대통령 재선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의 첫 번째 당선 축하식에서 보여준 미국 흑인들의 눈물은 그동안에 겪었던 그들의 신고(辛苦)의 세월을 상징해 주고도 남는다. 미국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말하고 인권을 외쳐 봐도 자국 안에서의 흑백갈등을 해결하지 않고는 그 모든 것이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역사적 숙제를 오바마가 일거에 해결하고 말았다. 얼마나 큰 위업인가. 오바마 대통령 한사람만의 위업이 아니라 미국 국민 모두의 위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미국은 떳떳하게 남의 나라에 대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에 있었던 흑백차별의 역사는 물론이고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비하심을 한꺼번에 바람과 같이 날려 버린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평가해 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나라는 남존여비(男尊女卑)와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 깊은 나라다. 아직도 전(前) 시대의 열녀가 추앙되고 있는 사회다. 이것이 현실이다. 여성은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의 앞에 나서는 것이 극히 조심스러운 위치에 있는 독특한 존재다.

조선조 시대에는 사대부들의 위계질서를 위해, 일제 침략시대에는 일제의 안정적 지배를 위해, 현대에 와서는 뿌리박힌 남성 우월주의로 인해 언제나 뒤로 밀리는 자리에서 부덕(婦德) 쌓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도록 교육받았다.

한국 근대화를 위해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든 갑신정변(1884) 때에도 다른 모든 개혁조치는 있었어도 여성의 개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갑신정변의 주동인물인 박영효가 반역으로 몰려 일본으로 건너간 뒤의 망명생활 중에 고종에게 올린 상소(1888년)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개화문제를 다뤘다고 한다(박용옥). 그는 상소문에서 여성에 대한 학대금지, 교육기회의 균등, 과부 재가의 인허 및 남자 취첩(取妾)의 금지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주장들이 정부적 차원에서 받아들여지기는 역시 갑오개혁(1894)을 통해서였다.

80년대 초 필자는 정보통신부(당시 체신부) 소속의 전화교환수로 근무하던 김영희씨가 남녀 정년차별제도와 싸워가면서 ‘남녀고용 평등법’ 제정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눈여겨본 적이 있다. 다른 공무원의 정년은 55세인데 유독 전화교환원인 여성에게만은 43세 정년으로 못 박은데 항의하여 법정투쟁을 벌여서 나온 결과였다. 불과 30년 전이다.

이런 역사의 바탕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오늘이 있기까지 여성의 사회참여와 지위향상을 위해 싸워 온 여성들의 피나는 투쟁양상은 미국에서 흑인들이 자신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싸워 온 역사와 그리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듯이, 한국에서 여성대통령이 탄생된 것 또한 하루아침에 이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 흑인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꿈만 같은 일이 그들만의 지지로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절대 다수의 백인들이 그 지지에 가세해서 이뤄진 꿈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여성대통령의 탄생도 또한 꿈만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여성 운동가들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많은 남성들의 지지가 보태어져서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미국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실이나 한국에서 여성인 박근혜가 당선된 사실은 동일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로 미국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듯이 한국은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으로 비로소 근대화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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