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종이
고대의 종이
  • 경남일보
  • 승인 2013.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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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창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자원연구소 자문위원·농학박사)
지난해 우리 지역의 모 기업이 파업투쟁을 벌인 후 파업 100여일 만에 사측과 연맹 간의 위임교섭에서 쟁점사항에 합의하고 투쟁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모 기업의 주력사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류가 이뤄낸 위대한 발명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화, 자동차 등등. 하지만 이런 위대한 발명은 모두 선대의 지식전달로 인해 꾸준히 연구하고 개발돼 이뤄진 것들이나, 인류의 역사와 지식을 후대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매체로 종이 발명의 필요성은 인류가 자신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은 본능에 의해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도 무덤이나 집터에 그림 등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즉 원시시대의 흙바닥. 돌. 동물의 뼈 및 점토판, 동물의 가죽, 나무판 등에 표시한 유물에서 우리들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편리하게 기록하고 남길 수 있는 재료를 끊임없이 탐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종이의 역사는 시작됐다. 중국 문명권의 죽간, 목간 그리고 좀 더 개발된 형태의 이집트 문명권의 파피루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개발된 양피지 등이다.

파피루스나 양피지 같은 것은 초지법이 유럽으로 전파되기 전까지 약 3000년 이상 종이의 역할을 담당했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주변에 많았던 파피루스라는 섬유질이 길게 늘어진 식물로써, 파피루스 줄기를 얇게 잘라 교차로 놓고 두들겨 넓고 평평한 면을 얻어 그림이나 문자를 쓰곤 했다. 또한 종이의 영문 ‘paper’의 어원이 파피루스 ‘papyrus’에서 온 것이며, 종이가 전파되기 전까지 양피지와 더불어 대표적인 종이 대용품이었다. 양피지는 소, 양, 새끼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BC 190년경 페르가몬왕 에우메네스 2세에 의해 발명됐다. 이것은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가 페르가몬에 대해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했으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양피지는 일명 ‘페르가메네’라고도 불린다.

한편 고대시대의 동양에서는 나무를 이용해 기록을 해 왔는데 기원은 서양의 파피루스보다 앞선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나무의 특성상 잘 썩고 보존이 되질 않아 흔적을 찾기 힘들 뿐이라는데 주로 대나무를 세로로 길게 잘라 서로서로 이어주고 이 부분에 각종 기록을 했는데 이것을 ‘죽간’이라고 한다. 또한 ‘책(冊)’이라는 한자어도 역시 대나무살을 이어붙인 모양에서 기원이 됐으며 일반 나무를 사용한 것을 ‘목간’이라고 했다. 따라서 죽간과 목간을 합쳐 ‘간독’이라 했다. 간독은 BC 8세기 무렵 우편, 행정문서, 재산상속, 개인적 편지 등 일상생활의 기록이 담긴 것들이 많이 발견돼 그 당시 널리 퍼져서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중국 전한시대의 채륜이라는 사람으로 봐온 것이 정설이다. 이것은 후한서(後漢書) 채륜전에 ‘채륜이 나무 속껍질, 아마섬유, 어망, 누더기 천을 이용해 종이를 만들어 원흥(元興) 원년(105년)에 황제에게 진상했다’라는 기술로부터 기인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가 처음으로 전파된 나라가 바로 고구려이다. 지리적 특성상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구려는 4세기 중반 이미 종이 사용이 국가적 차원에서 일반화돼 있었다고 하는데 그 근거는 고구려의 무덤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고구려 시대의 고분에는 사자의 살아생전 일상을 벽화로 남겼는데 여기에 종이가 있다는 것. 특히 4세기에 조성된 안악 3호분의 벽화는 그 시대 이미 종이생활이 정착했고, 따라서 종이를 기록매체로 사용한 것은 훨씬 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추정한다. 실제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들이 4세기 후반 이미 문헌 생산국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일찍이 종이를 들여와 사용했던 우리나라는 서양과 마찬가지로 역시 종교에 의해 발전이 이뤄졌다고 한다. 서기 372년 중국 스님이 고구려에 불교문명을 전하기 위해 왕실사절단으로 왔고, 불경 필사를 위한 제지술 또한 이때 같이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중국에서 전파된 제지술은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불교를 공인하면서 빠르게 발전했는데 7~8세기경 신라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인 ‘닥종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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