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봉꾼 할배도 재첩국 못 먹으면 허당
난봉꾼 할배도 재첩국 못 먹으면 허당
  • 여명식
  • 승인 201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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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독특한 먹을거리를 찾아서 <하동 재첩국>
섬진강 재첩잡이.
섬진강에서 어업인들이 재첩을 잡고 있다.


“재치국(재첩국)사이소!”.

밤 새워 마신 술로 인해 쓰린 배를 쓰다듬으며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재첩국 아지매’의 반가운 이 목소리는 50대 이상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국물 맛이 시원하고 담백해 주당들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널리 알려진 하동 섬진강의 명물인 재첩이 간장질환에도 탁원한 효능을 보여 불티나게 팔리는데 새벽길 ‘재첩국 아지매’의 반가운 목소리가 해가 뜨면서 사라져 버리면 군내 곳곳에 위치한 재첩국 집에서 재첩국으로 속을 풀려는 주당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옛날(?) 재첩국을 양동이에 이고 골목골목을 누비던 ‘재첩국 아지매’는 어느 때인가부터 자취를 감추고 섬진강 주변 곳곳에 재첩국을 파는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주당들이 아닌 관광객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재첩국 맛에 빠져들고 있다. 술 마신 뒷날 뽀얀 국물에 부추나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뚝배기 채 들이켜는 재첩국 맛은 먹어본 사람들만이 아는 진정한 술꾼들의 벗이다.

◇재첩의 생태

모래가 많은 진흙 바닥에서 서식하는 재첩은 국내에는 6종이 서식하며 종류로는 재첩, 참재첩, 콩재첩, 엷은 재첩, 공주재첩, 점박이 재첩 등이 있다. 하동의 방언으로 ‘생조개’라 부르며 이는 강조개란 뜻으로 이 외에 가막조개, 재치, 애기재첩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껍데기는 크고 성장선은 굵고 뚜렷하며 규칙적이고 약간 동그랗고 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표면에는 광택이 나며 두 껍데기를 결합시키는 인대가 발달했고, 양쪽에 껍데기를 단단히 닫기 위한 3개의 돌기가 있고 또 양 옆에는 그 보다 약간 긴 돌기가 있다.

재첩은 모래나 진흙 속에서 유기물이나 플랭크톤 등을 걸러 먹으며 색, 크기 등은 지역에 따라 변이가 심한데 모래바닥에서 서식하는 것은 황갈색, 진흙 뻘에서 사는 것은 흑색을 띠는 것이 보통이다.

▲하동 섬진강 명물인 재첩 정식 상차림.
◇재첩에 대한 스토리텔링

섬진강 특산물인 ‘강조개’을 왜 재첩(再妾)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하동군은 섬진강변을 중심으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재첩에 얽힌 사연을 재구성하고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재첩의 효능 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지역 특산물인 재첩을 스토리텔링화해 재첩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옛날 섬진강가에 삼시세끼를 강조개국이 있어야만 밥을 먹는 강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가 살았다,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3명 이상의 할머니(애인)을 만나야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특이 체질을 가졌다, 이 때문에 이웃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들로부터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느니 ‘습관이다’, ‘선친을 옥녀봉 아래에 모셔서 그렇다’라는 등의 시샘과 함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바람기도 계절을 탔다, 강조개가 나지 않는 상강부터 이른 봄까지는 맥을 못추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어느 해 여름날 섬진강에 물난리가 나서 강변 사람들이 강조개를 먹지 못하게 되자 할아버지의 바람기도 갑자기 멈춰 버렸다, 평생을 두고 애를 태우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이 비밀이 강조개에 있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그날부터 시래깃국과 된장국만으로 밥상을 차리니 할아버지의 바람기가 잡혔다,

문제는 이런 소문을 들은 동네 남정네들이 너도나도 강조개를 먹기 시직했고, 온 동네가 부부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때부터 강변 사람들은 ‘첩을 여럿 거느리고 하룻밤 사이에 3대를 본다’고 해서 강조개를 재첩(再妾)이라고 불렀다.

▲술꾼들의 속풀이에 좋은 재첩.
◇재첩의 성분과 효능

하동군이 경상대학교에 의뢰해 조사한 ‘재첩 성분 비교분석’ 자료에 따르면 재첩은 아미노산이 골고루 함유돼 있으며 지방 함량이 적은 식품으로 비교적 많은 불포화 지방산이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첩 100g 당 열량 90㎉, 수분 77.5%, 단백질 12.5%, 지방 1.9%, 탄수화물 5.8%, 회분 2.3% 등을 함유하고 있어 건강식품으로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미노산 가운데 메티오닌과 시스틴, 타우린이 많이 함유돼 간장의 해독작용을 돕는다.

또 재첩에는 마그네슘이 많이 함유돼 정서불안 해소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최근 재첩 연구결과에서 항암효과와 면역성 증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비만이나 동맥경화 등을 유발하는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적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재첩은 생리기능성 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각종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황을 함유해 체내에서 지질이나 콜레스테롤 대사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동맥경화나 혈전증의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재첩은 위장을 편안하게 해주고 부작용이 없으며 간 기능, 황달 및 당뇨에도 효험이 있다고 소개해 재첩이야말로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 온 진정한 의미의 건강식품이라 할 수 있다.

◇연간 생산량

재첩은 보통 한강 이남의 강에서 서식하는데 하동 섬진강은 물이 맑고 모래톱이 많은 데다 바다와 접한 기수지역이어서 재첩 서식에 더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30~40년 전만 해도 섬진강에는 ‘물 반 재첩 반’이라 할 정도로 재첩이 지천이었고, 섬진강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재첩을 잡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고 살 정도로 주요 소득원이였다.

하동 섬진강 재첩은 보통 날씨가 풀리는 4월부터 5월경께 채취를 시작해 6~8월 절정을 이룬 뒤 늦게는 11월 초까지 잡는다. 섬진강 주변에는 700여 명의 내수면 어업 종사자들이 챙이 달린 모자에 가슴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대나무 막대기 끝에 부채살 모양의 쇠갈퀴가 달린 일명 ‘거랭이(재첩 손틀방)’를 들고 강바닥을 훓으며 대대로 내려온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엔 섬진강 상류지역의 댐들이 농·공용수 취수에다 광양만 일대의 항로 준설 등으로 바닷물이 역류해 염분농도가 높아지는 등 강의 생태계가 변하고 있어 재첩 생산량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최근 10년간 하동군수협을 통한 계통출하를 보면 2001년 위판량이 연간 624t에 달했으나 2005년의 경우 247t으로 줄었다,

이처럼 섬진강 재첩이 위기상황에 직면하자 하동군은 섬진강 재첩의 명성을 보전하고 지역 특산 수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연차적인 이식사업으로 서식지를 섬진강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군은 지난 2006년 흥룡·화심·두곡리 일원 섬진강에 재첩 종패 2.56t을 살포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하동읍 광평리에 1.62t, 2008년 하동읍 화심리에 17.3t, 2009년 같은 지역에 14.4t, 2010년 하동읍 두곡리에 5.6t, 2011년 신기·광평·두곡리 일원에 7.6t, 지난해엔 화심·두곡리 일원에 9.7t의 종패를 이식하는 등 지금까지 1억4000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어린 재첩 58t을 이식했다. 2006년부터 하동군에서 재첩 서식지 확대사업을 추진한 결과 어업인들이 만족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2012년에는 234t으로 그 양과 서식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섬진강 재첩 모범음식점.

하동에선 재첩국과 재첩회 등 재첩을 원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 200여곳 정도, 가공공장도 50여곳 정도이며 이중 군에서 하동재첩만 고집하는 모범음식점을 18곳을 지정해 집중 관리되고 있다.

현재 식당에서 판매하는 재첩국은 8000원 정도, 재첩회는 2만 원 정도며 가공공장에서 영하 40℃에 냉동시켜 얼린 재첩국(파우치팩)은 500g 한 봉지(2~3인분)에 4000원에 판매한다.

하동재첩을 취급하는 모범음식점은 하동읍 화심리 섬진강횟집을 비롯 고향산천, 이화가든 등이 있고, 광평리에 여여식당, 동흥재첩국, 대나무식당, 소문난재첩국집 등이 유명하다. 또 하동읍내 한다사식당, 하동전골, 송림가든이 있고 목도리에 하동원조할매재첩식당이 손님을 맞고 있으며 고전면에도 신월리 신뱅재첩회식당이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돼 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IC 입구인 전도리에도 원조강변할매재첩식당, 원조나루터재첩식당, 동방회재첩식당, 물방골식당, 하동아지매재첩식당이 유명하며 금남면엔 돈토식당이 영업 중이다.

이와 함께 군의 소도읍 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하동읍 신기리 하동재첩 특화마을 내에도 섬진강뚝배기재첩, 하옹촌, 섬마을, 금양가든, 혜성식당이 성업 중이다.

외국인들의 섬진강 재첩채취 체험.
하동 섬진강에서 외국인들이 재첩채취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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