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덕담(德談)
<이준의 역학이야기> 덕담(德談)
  • 경남일보
  • 승인 201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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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符籍) 소회
계절과 월령에 따른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많다. 특히 음력 정월달 부근의 세시풍속은 인상 깊다. 입춘 날 입춘 시에 대문에 붙이는 입춘대길(立春大吉), 설날의 세배와 덕담, 정월대보름의 부럼, 달집태우기에 소원성취부 및 삼재소멸 액막이 속옷 던지기 등이 그것이다. 또한 액땜 부적(符籍)을 붙이거나 지니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세월에 대한 감각으로 시시때때 갖은 재앙을 물리쳐 넉넉한 복을 누리려는 소박한 마음의 소산이리라.

이러한 정초의 풍속들 중 가장 말썽 많은 것 하나가 액땜 부적이다. 사해동포(四海同胞)의 한량없는 마음을 가진 절간의 스님들이나 역술인들이 이러한 소박한 마음을 어여삐 여겨 정성을 다하여 부적을 그려 공짜로 나누어 주는가 하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을 부적을 아주 비싼 값으로 팔아먹는 사이비(似而非) 도사들도 즐비하다. 공짜 부적은 효험이 없으니 비싼 값의 부적만 맹신하는 사람들 때문에 부적 하나에 수백만원짜리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과연 그런 부적이 효험이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또 외국에서 겨우 몇 백 원짜리를 부적을 사 와서 국내에서 몇 십 만원에 파는 것들도 있다고 하니 정초는 가히 부적시장의 요지경(瑤池鏡)이라 할 수 있다.

부적은 경면주사(鏡面朱砂)로 그리는 것이 원칙이다. 경면주사를 단사(丹砂) 또는 진사(辰砂)라고도 한다. 경면이라는 말은 땅속에서 캐낸 붉은색 천연광석에 얼굴을 비추면 거울처럼 얼굴이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면주사는 다양한 용도로도 쓰인다. 고급 한약재, 정신질환자 및 간난 아기의 경기치료제, 단청(丹靑)의 재료, 심장 신경계 질환 치료보조제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이런 여러 효험을 지닌 경면주사는 부적을 쓰지 않고 그저 몸에 지니고만 있어도 좋다고 한다. 이 경면주사를 가루 내어 식물성 기름(참기름, 피마자, 산초, 들기름 등)에 개어서 닥나무 껍질로 만든 괴항지(창호지)에다 다양한 그림과 글귀를 그린 것이 부적이다.

부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칙령(勅令)이라는 글자와 그 변형이 가장 많다. 칙령이란 황제나 임금이 내리는 명령과 마찬가지로 각종의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악살들에 대하여 지고지순의 하늘의 상제(上帝)께서 물러가라고 명령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적 색채의 부적에서는 불(佛), 옴(aum, om) 등의 글자를 많이 보기도 한다. 또 부적에 담겨 있는 글자나 그림의 모양은 반듯한 모습이기보다는 뭔가 화급한 상황에 쫓기는 듯 급히 휘갈긴 모양이 대부분이다. 마치 전쟁에 당면한 듯 삶의 처지가 그만큼 심각하고 다급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림도 분명하기보다는 뭔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요상한 형상들이 대부분이다. 악살을 일으키는 기운도 악살을 막는 기운도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릴 뿐 분명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불안과 염려에 떠는 우리들 연약한 심성(心性)이 초월적인 어떤 힘에 기대어서 온갖 악살(惡煞)들이 소멸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때문에 은근히 부적들을 많이 찾고 또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부적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하찮게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가만히 살펴보면 몸과 차안에 어김없이 묵주, 십자가, 만(卍)자 목걸이, 염주, 연꽃, 예수님 상, 성모마리아 상, 부처님 상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실소(失笑)를 금치 못한다. 하여 어차피 부적을 지녀야 한다면 옳은 부적을 지니는 것이 좋다. 참된 부적은 사주팔자를 보고 간절한 정성으로 치열한 기도를 드린 후에 온 영혼을 다하여 만든 부적이다. 특히 본인과 어머니가 만든 부적이 가장 효험이 있다. 사랑과 정성과 간절함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부적의 효험은 그것을 소중히 생각하느냐 아니면 의심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부적을 꼭 경명주사로써 괴항지에 만들 필요는 없다.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어떤 글귀와 그림으로써든 자기 부적을 만들 수 있다. 부적 역시 일종의 자기 최면이고 자기 암시의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한수에 촛불 켜 놓고 천지신명께 드리는 어머니의 기도이든, 지방(紙榜)을 접어 제사를 모시는 후손들의 마음이든, 교회나 절간에서 드리는 기원과 간구이든, 마음 담아 간절히 염원하는 자기암시이든 진정으로 바라고 믿는다면 효험은 생기게 마련이다. 하여 비싼 돈 내고 허튼 부적에 목매다는 우행(愚行)보다는 자기를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 기분 좋게 출발하는 정초에 차라리 신선한 덕담이 더 생기(生氣)롭다. 덕담은 다른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부적이려니, 오늘 마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에게 꼭 맞는 덕담을 건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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