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
너머
  • 경남일보
  • 승인 201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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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란 (경상사대부설고 교사, 시인)
이 시간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저 공간 너머에는 어떤 세계가 있는가, 내가 가진 한계를 뛰어 넘는다면 운명은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가치 너머에서 판단하는 것은 어떤 인연에 손을 내밀게 할까,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beyond’(너머) 이다. 나에게 ‘너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여전히 꿈꿀 수 있게 하고 시를 쓰게 하는 결정적인 힘이다.

며칠 전 본교의 학생들과 중국 북경을 다녀왔다. 북경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관련된 지역을 탐방해보는 일정이었다. 우리 학생들도 연암 선생처럼 매일 저녁 일지를 쓰면서 여행의 동선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자 하였다. 다음은 북경에 있는 고관상대를 다녀온 날 박재영(경상대 사대부설고 2) 학생이 쓴 일지이다.

‘북경의 고관상대에 서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천문기구들을 본다. 선인들은 이 기구들로 하늘을 관측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별이 좋아서 관측한 사람, 별의 움직임이 신기해서 관측한 사람 등 다양했을 것이다. 나는 관측이라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나? 왜 시간은 한 방향이어야만 하는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뭘까 궁금해진다. 이론적으로는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 가능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시간이란 건 왜 생기는 것일까? 시간도 질량처럼 어떤 입자들에 의한 영향일까 아니면 홀로 존재하는 무엇일까?’

재영 학생은 지난 역사의 유물에서 시간의 존재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시간이란 것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찾을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경계가 분명한 듯 하면서도 불분명한 그 무엇인데 학생은 그 너머에서 시간을 질량 혹은 홀로 선 물질로 바라보면 어떨까 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기존의 상대성 이론 이외에 새로운 시간론(論)을 정립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이 곳에서 조선후기 실학자이면서 별이 된 과학자 홍대용을 만났다. 시간과 공간을 한참 지난 그 너머에서 조선의 학자와 북경의 천문학자가 근방의 유리창과 전문대가에서 만나고 교류하는 장면을 그렸다.

재영 학생이 낯선 땅에서 30분 내외의 시간동안 눈으로 본 것은 단지 열 개도 되지 않는 오래된 천문 기구였다. 그는 어쩌면 너머에 있는 시간과 관점을 마음으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마음으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의 대목에 우리가 밑줄을 그었듯이 말이다. 너머는 일종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아스라이 동경하는 그리움의 코드처럼. 가물가물한 옛날부터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미래의 풍경들은 모두 현실이 붙들고 있는 긴장된 삶을 풀었을 때 보이는 것이다. 총체적이고 공감각적인 ‘너머’가 내면의 벨을 누르고 들어와, 비틀거리는 인생을 외면하거나 밀어내지 않는데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경상사대부설고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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